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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Nov 07. 2020

연구원 라이프

한국 생활 적응기


1. 시키는 일 vs 하고 싶은 일

 연구원에 온 지 4달이 조금 지났다. 신입 박사들은 처음에 일을 잘 안 시킨다던데 나는 포닥 조금 하고 왔다고 경력직 대우를 해줘서 벌써부터 일이 많다.

 아무래도 학교처럼 연구 주제를 자유롭게 고르진 못한다. 주로 청와대나 정부 부처, 원장님이 관심 있는 (아주 다양한) 사안에 대한 보고서를 쓴다.

 시간을 내면 내 연구도 더 해볼 수 있겠으나, 천성이 게으른 나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일 처리에도 허덕이고 있다. 다행히 넓고 얕게 여러 사안을 다루는 게 생각보다 적성에 맞아서 아직까진 할 만하다.

 그렇다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하면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재량이 되는 한 받은 일 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다뤄보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다. 원래 주제인 이주 문제와 새로 관심이 생긴 기후변화 대응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입사 전부터 하던 작업들도 마무리해야 하는데 시간 내기가 영 어렵다. 저널에 냈던 논문 수정 요청이 세 군데서 동시에 와서 뭐부터 손대야 할지 고민이다. 어떤 박사님은 자기 연구하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기도 하신다는데... 난 아마 안 될 거...

("sns를 좀 줄이면 되지 않겠냐"라고 말한다면... 좋은 지적이다.)



2. 말의 무게

 국책연구원 박사라고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럽 이슈 관련 국회/정부 쪽 사람들이나 기자들한테 종종 전화가 온다.

 그저께인가는 어디 기자한테 전화가 와서 코로나19 재확산이 유럽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물어봤다. 내가 얼마나 알겠냐만은 그냥 아주 상식적인 대답을 했다. 안 좋아질 거라고.

 얼마 후 확인해보니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어쩌고저쩌고"하며 기사에 내 이름이 나왔다. 당연한 말을 쓰면서 굳이 왜 내 이름을 넣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혹시 내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면 어쩌지, 괜히 아는 척했다가 망신당하면 어떡하지, 내 말과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 될 텐데... 실력에 비해 말의 유통이 더 많아질까 덜컥 겁이 난다. 철없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릴 때와는 또 느낌이 다르다.

 최근에 유독 정치인, 전문가들의 실언/망언이 눈에 띄는데, 이래저래 나도 말의 무게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적어도 소외된 사람들을 무심하게 찌르는 말은 안 하려 노력해야겠다.



 3. 풍요 속의 회상


 어쨌든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게 맞는지 고학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풍족하게 지낸다. 연구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돈이 있어서 일 관련 지출은 대부분 충당이 되고, 대출금 이자지원 같은 제도적 혜택으로 고정비용이 많이 줄어든다. 이런저런 대외활동에서 나오는 추가 수입은 덤이다.

 처음 걱정했던 것보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게 분명한데도 우리 부부는 해외에서 빠듯하게 살던 습관이 몸에 배여서 돈을 별로 못 쓴다. 옷이나 도준이 장난감 같은 건 당근마켓에서 조달하고 웬만하면 외식이나 배달 대신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

 얼마 전부터 날이 추워져서 난방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옷 좀 두껍게 입으면 되지 왜 돈을 써' 하며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 도준이까지 셋이 두꺼운 니트를 입고 썰렁한 집에서 놀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이제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은데...'

 새삼 영국에서, 남아공에서 어렵게 지내던 시절이 떠오른다(라떼는...). 등록금은 어떻게 내나 집세는 모자라지 않을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당연히 좋은 옷을 사거나 근사한 데서 외식을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아내는 채러티 샵에서 옷을 사던 습관이 남아서 아직도 새옷을 못 사입는다.

 변변찮게 살았어도 그때가 우리 인생에 가장 빛나는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도저히 안 채워질 것 같은 재정이 기적적으로 채워질 때 오는 희열도 있었다. 그럭저럭 풍족하게 사는 지금은 그때 같은 행복감을 느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그 시절에 비해 좀 나아졌다 뿐이지 우리가 엄청난 부를 쌓은 건 아니다. 여전히 2년 혹은 4년 후 거주할 집이 있을지 고민해야 되고, 치솟는 주택 가격에 언젠가 집을 살 수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약간은 해소해준다. 아무것도 없던 그때도 행복하게 살았는데 훨씬 사정이 좋은 지금 왜 그렇게 못 살까.

 영끌이다 패닉바잉이다 하며 지금 낙오되면 나중에 우리 몫이 없을 것처럼 겁을 주는 세파 가운데, 우린 빛나던 시절을 생각하며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다. 돌아볼 과거가 있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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