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정민 Oct 07. 2020

시절의 고단함을 극복하는 법.

-엄마의 태도를 익히는 중입니다 #2-

애를 키우며 글을 쓴다. 주부인 동시에 쓰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쌍둥이가 18개월쯤 되고나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선 다들 의아해했다. 애 키우는 일이 별로 힘들지 않나 보구나, 싶어뵀던 것 같다. 아니면 그 반대. 너무 힘들어서 돌아버린 건 아닐까 라고.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매달리는 걸까 묻고 싶은데 차마 그렇게 물어보지 못하는 지인은 에둘러 질문하곤 했다. 

"그 일은 돈은 좀 되는 건가? 요새 책 잘 안 읽잖아 사람들."

“돈이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볼 일 아니겠어?”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그렇게 대답해 버렸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돈이 벌리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그건 진심이었다. 

내가 벌지 않아도 당장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것보다 돈 버는 일의 가치로움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요즘 들어서 하게 되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글쓰기에 내 존재가 실려버렸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였다. 

마냥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나니, 인정받고 싶어 지더라고. 

글로 버는 돈은 글 쓰는 일이 타인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또 타인의 자발적인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 혼자 쓰고 마는 글이 아니라 타인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가닿을 수 있는 글이 쓰고 싶어 졌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더라고. 쓰면 쓸수록 부족함이 보이는 나의 글 때문에 마음이 쿡쿡 쑤시는 날이 하루, 이틀 쌓여갔다.  

돈 따위는 벌지 않아도 좋다는 나의 말은 오만했고, 비겁했다. 나는 글로 돈이 벌고 싶어 졌다.     



아, 인정 욕구. 남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요즘은 취미의 영역에서 직업의 경지에 이르러야지만 성공한 삶이라고들 하는데. 자의식이 흔들리곤 했다. 괜히 능력 없는 인간처럼 여겨져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글로 인정받는 일 같은 건 안 할 거야! 노트북을 쾅 닫았다.   


  

우리의 치얼스!


그러고 나서 뭐했냐고? 우습게도 책꽂이에 가만히 꽂혀있는 분홍색 다이어리를 집어 들어 펼쳤다. 

말 그대로 끄적끄적. 아무런 생각 없이, 고민 없이, 걱정 없이 글을 써댄다.  

그러다 보면 기분이 한 결 온화해지곤 했는데, 주눅과 괴로움, 슬픔 따위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 건 다름 아닌 취미로서의 글쓰기였다. 

(야구선수는 쉬는 시간에 야구를 하지 않는다는데, 나에게 글쓰기는 애초부터 일이 아니라 취미였기 때문인지, 아직 본격적인 일의 수준으로 격상하지 않은 탓인지 여전히 취미는 글쓰기다)

기죽지 말라고, 꺾여있지 말라고, 가슴 쫙 펴라고 나의 글은 내 등을 쓰다듬어줬는데 그러고 있다 보면 일로서의 글쓰기에 다시 도전해 보아야지! 결심하고 싶어 지게 된다. 

무너졌던 마음이 다시금 차곡차곡 쌓여간다. 사정이 이러니 돈이 안 된다고, 남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허우적 긴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의리가 있지.


      

살면서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잠깐씩 발들인 취미활동의 세계가 있긴 했지만 하나같이 몇 달을 버티지 못한 채 두 손들고 말았는데, 지금 생가해 보면 내 시간, 정성, 돈을 더 들일만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단순 호기심에서 시작해 금방 시시해져버리고 만 것이지 뭐. 

그런데 이상하게도 쓰기만큼은 달랐다. 애 둘을 재우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식탁 앞에 앉았다. 마치 하교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분식집으로 달려가는 마음으로 식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돈이 되거나, 명예를 얻거나, 인정을 받는 일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냥 그 시간이 좋았다. 아이들의 취침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마음은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달뜨곤 했다.

예전처럼 야식과 맥주로 배를 가득 채우지 않아도 허기지지 않았다. 커피 한 잔, 물 한잔, 간혹 달콤한 과자 몇 조각 같은 걸로도 충분히 배가 불렀다. 영혼의 허기가 채워졌기 때문이리라. 

고작 취미에 이러한 힘이 깃들어 있다니. 진짜 취미를 갖고 난 후, 나는 삶의 크고 작은 변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취미가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밤마다 마시던 맥주와 야식에 미련이 생기지 않았다.

괜한 무기력감에 소파 한구석에 박혀 앉아 지지리 궁상을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러니깐 엄마의 삶이 전과는 다르게 훨씬 더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차곡차곡 길러졌다.      



어느 연예인이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일이 없어 쉬는 시기, 자신을 지킬 수 있으려면 취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그 시기를 버틸 수 있다고. 그땐 이왕 쉬는 거 신나게 놀자는 말인가 보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 말의 진심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삶이 툭 하고 부러지지 않을 수 있는 유연함과 넘어져도, 주저앉아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회복력을 취미에서 얻을 수 있다. 한 템포 쉬어가야 할 때, 그 한 템포에 슬픔과 무력감 같은 것보단 즐거움과 기쁨 같은 것들로 채워 넣는 거다. ‘지금은 그런 때’라는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 않던가. 

무기력하게 도망치자는 말은 아니고, 쉬어야 할 땐 확실히 웃으면서 쉬자는 말. 당당하게 ‘재충전’ 하는 거지 뭐.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매일을 보내는 것보단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훌쩍 자란 두 아들이 무엇을 하든 좋아하는 일 하나는 꼭 간직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옆에서 이것저것, 품고 살면 좋을 취미 같은 걸 귀띔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직권남용일 뿐이니 두 입술을 꽉 깨물기로 한다. 

나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 안에서 감흥을 느끼며 마음이 가는 대로 기뻐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좋겠다. 

시절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덕분에 활력을 꾸준히 되찾길 바란다. 

살아보니 공부, 일, 관계, 미래...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더라고. 그때마다 꼭 한 번은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데, 딱 그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서 숨구멍이 트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 앞가림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쯤 되면 어미의 위로나 조언 같은 것에 마음이 동요되거나 기운을 얻거나 할 일이 적을 것 같아, 미리 글로 써 둔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꼭 유서를 쓰는 기분이 드는군. 뭐, 물려주고 싶은 태도에 대한 글이니 다르지도 않겠다.      


두 아들아, 골머리 싸고 있다고 해결되는 일 같은 건 별로 없더라고. 우선 네 마음을 조금 기뻐지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가끔 그 기쁨의 틈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슬그머니 들어오기도 하더라고. 뭐, 실마리 따위가 안 보이면 어때? 골치 아프던 게 조금은 가셨을 테니 다시 치열하게 골머리 싸매는 거지. 펑! 하고 터지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 삼으면서 말이지.     




이전 05화 한껏 차서 가득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