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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Oct 06. 2020

한껏 차서 가득함.

-엄마의 태도를 익히는 중입니다. #1-

‘충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한껏 차서 가득함. 

누군가가 나에게 아이가 어떻게 자라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고. 

금목서의 향으로 가득찬 가을공기.

모든 것이 가득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충만이라는 것은 모든 환경과 상황이 아쉬울 것 없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아닐뿐더러, 억 소리 나도록 아이 주변을 채워줄 능력도 생각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 

가진 것 안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인간이길 바란다.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선 많든 적든 주어진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터. 

감사할 줄 아는 이에겐 어김없이 행복이 깃든다고 믿는다. 그 행복감은 아이의 마음을 기쁨과 즐거움, 만족스러움과 사랑 같은 것들로 가득 차오르게 할 것임에 분명하다.    


자녀관이 곧 인생관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가의 문제는 곧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깐 사실은 충만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아이를 향하기 이전 나에게로 향했던 바람이었다. 그 무엇보다 마음에 충만함이 가득 깃들길 바랐는데, 행복을 가장 자주 느끼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충만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길 바란단다.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 시작한 건 책을 읽기 시작하고나서부터였다. 그전까지 내 세계는 몇 안 되는 영역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자연스레 얻어진 것뿐이었다. 

그러니깐 학교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결혼으로. 그 안에서 배운 지식과 만난 사람들로 내 세계는 구축되었는데 딱히 불만도 불안도 없었던 것 같다. 

아는 것이 있어야 질문도 있다는 말.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질문이 없어도 삶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굴러갔다. 직장에선 따박따박 월급이 나왔고, 관계는 가끔 지긋지긋해지긴 했어도 양호했으며, 사회가 규정한 속도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결혼해야 할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를 갖기 늦지 않은 나이에 출산까지 했다. 

원하는 대로 삶이 이루어졌다고 할 순 없지만, 모난 돌은 아니었다. 

우쭐댔던 것 같다. 뭐 이만하면 잘 사는 인생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낳아 기르며 완전한 민낯이 된 나를 만나기 전까지.      


헛헛해진 마음, 무기력한 기분, 자꾸만 슬퍼지는 감정 앞에서 우왕좌왕 대기 시작했는데, 홀몸이었을 때완 다르게 외부환경에 전혀 의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아이와 집에서 지내면서 나의 기분까지 내가 맞춰주어야 했는데, 늘 소속되어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지냈던 터라 자생력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이가 잠이 들고 나면 긴 밤이 외로웠는데 도대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없인 존재가치까지 사라져 버리니 모르긴 몰라도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책을 집어 든 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 이후, 내 삶은 완전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으니깐. 내적으로. 그 내적인 변화는 외부의 삶 마저 천천히 바꿔나가기 시작했고 덕분에 책을 쓰며 살고 있는 중이다. 


평생 읽었던 책 보다(교과서 포함) 훨씬 많은 책(그래 봤자 다른 독서가들에 비할바 아니지만)을 아이를 기르는 동안 읽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 덕에 모든 조건을 빼고 오직 ‘나’와 독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순간, 이전에 구축한 나의 세계는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나도 내 삶을 사랑하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그저 굴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꾸고, 보살피고, 아끼며 살아가고 싶어 졌다고나 할까. 나의 장점을 무엇이며 단점은 어떤 것인지부터, 어떻게 살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까지. 사소한 질문부터 진중한 물음까지 내 안에서 솟구쳤다. 

결국 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후 아주 사소할지언정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내 삶을 진심으로 감싸 안고 나니 무얼 해도 마음이 날뛰었다. 알 수 없는 만족감이 차올랐고, 비슷한 상황 속에서 그전까진 미처 깨닫지 못한 기쁨과 행복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점이,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충만이라는 것은 결국엔 삶 구석구석에 마음을 열어두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해, 세계를 위해 애정을 쏟겠다는 말. 관심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 

기왕이면 더 나은, 더 좋은, 더 기쁜 것부터 발견해 보겠노라는 다짐. 

어떻게 서든 감사의 마음을 놓지 않기로 했다.     

 

엄마처럼 해볼게.

“나는 아빠처럼 크고 싶어요” 무엇을 닮고 싶다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아이가 내뱉은 뜻밖의 고백은 그 순간 우리 부부를 더없이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는데, 딱 그만큼 더 잘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산다고 잘 큰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부모가 바라는 대로 아이가 자랄 리 없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어쨌든 태도의 결, 생각의 결 같은 것은 닮는다고 생각한다.

어미새의 날갯짓을 보며 어린 새는 나는 법을 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더욱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법을 찾아내길 바란다. 충만한 삶이란 스스를 가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에게 주어진 반짝이는 선물과도 같으니.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 같은 것에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쭈! 네가 어떻게 하든 나는 나를 기쁘게 하는 걸 더 많이 찾아낼 거야! 하고 대차게 대들었으면 좋겠다. 


행복이나 기쁨 같은 것은 가진 것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만히 있다고 해서 주어지는 무언가가 아님을, 그 모든 것은 본인이 찾아내려 노력할 때라야만 발견할 수 있는 귀 한보 석임을 엄마보다는 빨리 깨달을 거라 믿는다.

나의 그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선 결국 나부터 잘해야 한다는 것을 또 한 번 글을 쓰며 되뇌게 된다. 

잘 살아내야지.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매일 다른 기쁨과 행복이 숨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가야지.


아이는 부모의 태도와 생각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아이의 생각과 마음 곳곳에 부모의 시선이 새겨지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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