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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Oct 30. 2020

세상에 맞서기 위해 차곡차곡 모아야 하는 것이 있다.

엄마의 태도를 익히는 중입니다. 


엄마, 나 소중해! 때리지 마!

맞아, 너 소중해. 때려서 미안.      


때린 건 아니었다. 바빠서, 나에겐 상황이 급박해서 채근하던 중이었다. 빨리 옷 입고 나가야 한다고. 손길도, 말투도, 눈빛도 거칠었겠지. 

등을 떠밀었다. 어서어서! 

그때, 아이가 나에게 때리지 말라고, 자신은 소중하다고 소리쳤다. 

황당하고 귀엽고, 기특하고 새삼스러우면서도 머쓱해져 버려서 웃으며 사과했다.

아, 모르겠다. 늦으면 하는 수 없고 뭐.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늘 이야기해주었다. 넌 소중해. 귀중하고, 중요해.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것 같았다. 어떠한 슬픔에서도, 좌절의 순간에서도 가장 먼저 자신을 주섬주섬 주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깐. 

소중하기 때문에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귀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겠지. 

그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를 끽긴하게 여겼으면 싶었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용이나 포용 같은 건 그러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기니깐.     


네 살 두 아이에겐 소중하다는 건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거라고 일러주었다. 소중한 건 아껴주는 거고, 사랑해 주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네가 화가 나도, 속상해도, 소중한 건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거라고. 장난스럽게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는 아이에게 너는 소중하니깐 아프게 하지는 마.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지를 때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아이가 ‘나 소중해.’라고 했을 때, 놀랍고 대견했다. 

듣고 있었구나.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었는데, 스몄구나. 엄마의 마음이 네 안으로 흘러갔구나 싶어 기뻤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언제까지고 이어지진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이야 엄마의 품 안에서,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지내니깐.

넌 소중하나는 말만 들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깐. 

환상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말랑하고 어여쁜 마음을 잃지 않으며 살 수 있는 건 어리기 때문에, 부모의 품 안에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아직 발 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네 세계 정도, 엄마의 힘으로 결계 쳐 줄 수 있다. 

거센 바람과 퍼붓는 비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같은 건 아직 경험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언제까지고 따듯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이성적으로도 옳지 못하다는 걸 안다. 

차츰 자라난 아이는 더 넓은 세상에 뒤섞이게 될 테고, 더불어 아이의 세상 또한 넓어질 것이다. 

한계가 분명한 엄마의 결계는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할 것이고.


아이는 넓은 세상에서, 보호 없는 세계에서, 여태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 사건, 사람 같은 것으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마음을 다치게 될 것이다. 

상처 부위를 통해 ‘나는 소중하다’는 그 마음이 빠져나기도 하겠지. 

떨어진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판단으로, 남보다 못하다는 비교와 남들처럼 해 내고 싶다는 열망과,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으로 마음 곳곳은 얼룩질 것이다.     


그때도 엄마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전하리라. ‘넌 소중해. 넌 귀해. 이 세상에 너는 단 하나뿐이잖아.’라고. 어리던 그때처럼, 다 큰 아이의 손을 잡고선.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러면서 꼭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혼자만 알아도 좋으니 자신을 칭찬할 만한 일을 해보라고. 

내가 나에게 넌 참 괜찮은 얘구나! 말해줄 수 있을만한 일을 끊임없이 해 보라고.

자기만족으로 끝날 일일 지라도, 내면은 분명 충족될 것이며 차오른 충만의 힘으로 또다시 세상의 기준을 버텨낼지도 모를 일이니깐.


나를 사랑할 만한 기억, 나는 소중하다 여길만한 작은 조각들을 꾸준히 모으며 살아가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사람이며, 괜찮은 인간이기도 하다는 걸 놓지 않고 사는 일은 혹독한 세상을 헤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일러주고 싶다. 




기분이 좋지 않을지라도 동네 이웃을 만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마을에 떨어진 쓰레기는 집으로 갖고 오기도 한다.

배고파 울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냉장고를 뒤적이고, 울적한 이웃을 위해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쓴 글이 팔리지 않아 무능하다는 기분을 시시때때로 느끼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기특하다 여기는 일상의 순간을 통해 기운을 얻는다.      


괜찮은 애이기도 하니깐.

영 몹쓸 인간은 아니니깐.

그래도 나는 나의 이러한 점을 좋아하니깐.     


일도 인간관계도 사랑도.. 모조리 잘 풀려 아무런 의심 없이 나는 대단하고,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동화 속 세계에서나 있을법한 일.

나 자신을 좋아해 줄 수 있는 순간,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는 조각을 차곡차곡 모으는 일로 ‘나는 소중하다’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그 마음의 힘으로, 어떻게든 곤두박질은 치지 않는 자존감으로,

세상에 맞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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