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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Oct 20. 2020

소중한 것을 위한 인내.

엄마의 태도를 익히는 중입니다. 


심술도 고약하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모래를 던지고, 발로 땅을 쿵쿵 찧고, 엄마가 제일 싫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에게 두 가지의 마음이 순차적으로 생긴다. 


‘너만 성질 있냐? 어디서 감히!’ 

버르장머리를 확 뜯어고쳐줘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우선 본능적으로 떠오른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눈을 치켜뜨고 네가 한 잘못이 뭔지 그것부터 따지고 싶어 지는 것.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끔, 따끔하게 야단쳐 주고 싶은 마음이 확 솟구친다. 

지금의 모습이 아이의 평생 모습으로 남는 건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하고, 부모가 돼 가지고 아이의 행동하나 옳게 심어주지 못한 것 같아 자책감도 밀려온다. 혼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화가 끓고 있는 중. 


그리고 나면 급하게 또 하나의 마음이, 완전히 다른 마음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아이니깐, 제멋대로의 상태를 태도 한 편에 지니고 살아가는 건 아이이기 때문이니깐.

제 마음을 옳은 방법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것도 아직 덜 자랐기 때문이라고 여겨주자는 마음이 급히 나를 가로막는다.      



남들이 보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저렇게 야단법석인데, 뭐 라도 하지 않고 왜 가만히 있는 거야?라고.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실은 되게 갈등하고 고민하는 중.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자의 방법을 택하는 것보다 후자 쪽을 택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걸 내가 나에게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소중한 건, 아무리 화가 나도 소중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나에게 우선 해 주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육아서에서 배운, 아이에게 말 거는 법이나 바른 부모 행동 방법 같은 것은 어느새 안드로메다 행.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날것 그대로인 아이는 언제나 예측불허 상태인데, 딱 그이 유로 나 역시 이성적인 판단에 혼란이 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순간, 결국 떠오른 건 평소에 품고 있던 태도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이가 잔뜩 화가 나는 경우는 실은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모래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서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서 불편하다고 울기도 하고, 옷에 물 한 방울 튄 것에 팔딱거리며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엄마가 어떻게든 불편을 해결해 주기 위해 다정하고, 친절하게 온갖 노력을 해도 아이의 눈엔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만이 들어 올뿐. 

막무가내로 자신의 기분만 생각하느라 모든 것이 뒤틀려버린 아이를 보고 있으면 엄마로서 비참해지고 만다. 이렇게까지 내가 너에게 하찮으냐고 묻고 싶어 지는 것.      


아마 아이가 십 대였더라면, 그렇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네 기분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부을 만큼 내가 하찮으냐고. 그런 거라면 무척 섭섭하고 슬프다고까지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딱 네 살. 천지를 분간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생명체에겐 그런 말은 무용할 뿐. 대신,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일러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라는 아이의 마음에서 오래 잊히지 않을 작은 마음을, 하지만 귀한 태도를 지금 심어주어야겠다고.     



내가 어렸던 시절, 간식이래 봐야 문방구에서 파는 50원, 100원짜리 불량식품이 거의 다 였다. 가끔 용돈으로 슈퍼마켓에서 300원을 주고 새우깡을 사 먹으며 희희낙락 거리던 때. 

엄마가 어디에서 사 오셨는지, 울릉도 호박엿을 한 통 내게 주었다. 문방구에서 사 먹던 엿은 딱딱하고 이에 쩍쩍 들러붙어 손가락을 입안으로 쑤셔 넣어가며 힘겹게 먹어야 했는데. 

엄마가 사 준 엿은 글쎄 몰랑몰랑한 것이 이에 붙지도 않아 어린 마음에 굉장히 놀라워하며 하나씩 아껴 먹던 중이었다. 

엿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학교를 가면서 “엿, 다 먹지 마”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더랬지.

그런데 그 날 집에 이모부가 들르셨고, 내 줄게 마땅찮았던 엄마는 호박엿을 이모부에게 내주었다고 했다. 

냉장고에 있어야 할 내 엿이 없어져서 무척 속상해하며 방바닥에 드러누워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내 엿을 왜 주었냐고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떼도 썼었다. 

"엄마도 이모부가 엿을 몽땅 다 먹어버리길래 속으로 얼마나 안타까웠는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먹는데 다시 넣을 순 없잖아."  

무척 미안해하셨다. 

다음에 또 사주겠다, 지금은 하는 수 없지 않으냐며 인내심 있게 엄마는 나를 달래주셨고. 

하지만 그칠 줄 모르고 화를 냈는데, 처음엔 엿을 못 먹는 것에 대한 섭섭함에서 시작한 화가 나중엔 무작정으로 치솟아버리는 짜증이 되고 말았다. 내 기분이 상하니깐 이 정도는 상관없잖아? 그러는 듯이. 

엄마도 도가 지나친 나의 화에 결국 화가 났고, 더 이상 아무런 떼를 쓰지 못하고 얼굴까지 이불을 폭 덮어 버렸다. 

이불속에서 한 참을 가만히 있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괜한 말을 하며 내 기분이 풀렸음을 넌지시 알렸는데, 엿을 먹은 건 엄마가 아닌데 괜히 엄마 아게 화풀이를 한 것이, 시간이 흐르고 보니 미안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마음을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마음과 별개로 엄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일찍이 깨닫지 못했던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엄마에게 화를 내도 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차 싶은 마음은 한참 후에나 스멀스멀 올라온 것.      


화가 난다고 흙을 던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가 제일 싫어!”라고 외치는 아이를 가만히 불렀다. 

그리고 다시 되물었다. 엄마가 소중하지 않으냐고.

아이는 입을 삐쭉대며 엄마는 소중하다고 말했고, 나는 그런 아이를 꽉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해.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이야. 네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도와줄게. 그렇게 화내면서 말하지 않아도 돼.”     


흙을 던진 것,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것에 대한 사과를 받고 나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신발에서 흙을 털어 다시 신겨주었다. 자꾸 흙이 들어갈지도 모르니 신발을 벗고 놀아도 된다고 이야기도 해 주었고. 

아이는 언제 화가 났냐는 듯, 내게 맛있는 모래 요리를 잔뜩 만들어 주었다.      


내일이면 또다시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가까운 누군가에게 화를 낼 것이다. 아끼던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러면 또다시 나는 되물을 것이다. 똑같은 질문을, 가만히.

엄마의 품에서 마음을 진정 킨 아이는 곧 깨달을 것이 분명하다. 아! 내가 너무 했다! 하고.

이 상황이 얼마나 많이 반복되고, 지속될까. 하지만 차츰 쌓여 선명해지겠지.

인생을 살아가는 길잡이 같은 감각은 어린 시절에 새겨지기도 한다고 믿으며, 인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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