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정민 Oct 15. 2020

아이에게 꼭 일러주고 싶은 말.

엄마의 태도를 익히는 중입니다.

마당 한쪽, 화단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모래놀이터로 만들어버렸다. 꽃 대신 모래를 잔뜩 넣었다. 그곳에서 삽질도 하고, 땅도 파며 놀라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도 좋지만 지금 나에겐 아이들의 활짝 웃는 미소가 더 아름답고 예뻐 보이니깐.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실보실한 모래를 화단에 채워 넣기 위해 남편은 몇 번이나 삽질을 한지 모른다. 집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모래를 수레에 펀 뒤, 그걸 집까지 싣고 와 모래놀이터에 붓는 그 작업을 대여섯 번 정도는 했을 것이다.

아이들도 돕겠다며 저 보다 큰 삽을 들고 아빠를 쫓아다니며 한몫 거들었다.      

화단이 모래로 가득 차고, 아빠가 “아, 힘들어! 이제 끝! 들어가서 놀아!”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외쳐댔다. “와!! 신난다!” 모래 고마워요, 아빠

헥헥거리던 남편은 아이의 고맙다는 말을 듣고선 맹한 주름을 얼굴에 가득 지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물론 나 역시 토끼눈을 뜬 채 남편을 바라보았고.



그날의 그 순간을 평생 보물로 삼고 싶을 정도로 우린 기뻐지고 말았다.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일에 ‘고마워요!’라고 아이는 외쳤을 뿐인데, 왜 나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고 말하고 있는건지. 자꾸만 아이가 외친 그 고맙다는 말이 귓전에서 맴맴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건지.      


듣는 순간, 기분이 달뜨는 말, 고마워요.

작고 사소한 일엔 싱긋이 웃고 말거나, 우리 사이에 뭐, 라는 생각으로 생략하고 지나가곤 했던 말.

고맙다고 말하려니 괜히 머쓱해서, 말 안 해도 알고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 이 정도는 당연하지 하며 지나치기도 했던 말.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왜 어려워진 걸까.

고마움의 결정체인 부모에게도, 존재 자체로 기쁨은 가족에게도, 곁에 있어주어 늘 든든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마움이 얼마나 많았던가.       


순수한 아이가 부러워졌다. 내 마음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그토록 아름답구나 싶었던 것.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가능하다면 닮고 싶어 졌다. 고마운 일에, 나도 씩씩하게 고맙다고 해야지. 뭘 이런 걸 다~라는 멋쩍은 말 대신 그냥 담백하고 진솔하게,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살아야지 하고.  

그러고 나니 내겐 어떤 고마움들이 공기처럼 둥둥 떠 있는지 생각하며 지내고 싶어 졌다고나 할까.

 당연한 줄 알았지만 실은 당연하지 않은 감사가 얼마나 내 곁에 많은지 말이다.      



얼마 전, 이웃 이모가 “민아, 우리한테 쟤들을 보고 살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맙다.” 고 했다.

천방지축 두 아이가 마당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깔깔 웃는 그 모습을 보며.

쟤들 덕분에 웃을 일이 많다고, 에너지를 팍팍 얻는다고 말해주었다.

아, 이런 일도 고마움이 될 수 있구나. 그럼 나도 옆 집으로 이모들이 이사와 주셔서 고마워요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고맙다는 뜬금없는 고백에 그만 멍해져 버렸다. 이런.     



시시한 순간에 고작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얹은 것뿐인데,

반짝반짝 그 순간이 귀해진다.


간식 시간이 되어 아이에게 빵을 내주었을 뿐인데, “와! 내가 좋아하는 빵이네!! 고마워요 엄마”라는 말을 듣게 되면 빵을 준 내 행동이 근사해져 버리는 것처럼.

가만히 이야기를 듣는 것 말곤 딱히 할 말이 없었을 뿐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낸 옆집 이모가 “속이 후련하니 좋네, 너네가 옆에 살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뜰 때, 마치 이곳에 사는 일이 굉장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아이를 기르는 일은 그저 내 일일 뿐인데, 틈만 나면 “애들을 잘 키워줘서 고맙다”라고 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 내 존재가 대단해져 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했을 고맙다는 말 역시 그의 마음에 닿는 순간 환한 빛이 되어주었을지 모를 일이겠구나.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의 조각에 빛을 내어주며 살아간다면 하찮고 시시한 일상도 꽤 즐겁고 기뻐지지 않을까. 고맙다는 말속에 담긴 진심 덕분에 불쑥, 행복이 솟아나지 않을까.  

    

고마워.

고맙다고 말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


네가 내게 해 준 말로, 또 내가 네가 한 말로 우리의 순간이 만들어지고,

인생이 꾸려지기도 한다.


그러니깐 좋은 말 한마디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말을 가르칠 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 다음으로 ‘고마워요’ ‘미안해요’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같은 말을 가르쳐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 보단 누구나 그렇게 시키니깐, 나도 무의식 중에 아이에게 일러주었던 말이었다.

아, 우린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말만으로도 삶을 근사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때, 가장 많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말이라는 것도.

그리고 고마운 일, 미안한 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일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된 ‘고마워요’라는 말이 잊고 있던 본능을, 귀한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쿡 하고 깨어나게 해 주었다. 아 맞아. 고맙다는 말엔 그런 힘이 있었지!

고마워요,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 아니었어. 참!


아이를 통해 다시금 마음에 되새긴다. 당연한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지 따위의 말은 너와 내가 통한다는 뜻이 아니라 무심해질 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되겠다.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땐 분명하게 말로.

표현되는 그 순간, 반짝 빛을 내며 너와 나의 세계에 새겨지는 법이다.      


이전 09화 소중한 것을 위한 인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