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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민 Oct 28. 2020

매 끼니 이것으로 밥을 짓기로 했다.

 “당신은 좋겠네. 마음대로 나갈 수 있어서!” 

마치 혼자 놀러라도 가는 몹쓸 사람인 양 비아냥 거렸다. 출근하는 남편의 뒤꽁무니에 무거운 돌덩어리를 기어이 달아 놓고, 나도 똑같은 돌덩이를 짊어졌다.

집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무얼 하든 재미있고, 어딜 가든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현관문을 닫는 순간 남편은 하하호호 미소 짓겠지 싶은 음산한 상상 때문에 곱고 다정한 마음으로 배웅할 수 없었다. 집 안에 갇혀 애나 보고 있어야 어야 한다니, 심술이 났다.  

무겁고 버거운 마음으로, 우울하고 힘없는 상태로 두 아이를 돌보았다.     


우울의 시작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임신을 했을 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심정이 되어 의기양양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은 우아하게, 음식은 건강하게, 생활은 느긋하게, 생각은 너그럽게. 모든 것에 온화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건강하게 아이를 낳는 것.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지 않아도 위기의식 같은 건 없었다.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지내면서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단단했다. 존재하는 일에. 

배가 불러갈수록 어깨도 한껏 올라갔다. 

허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걷기만 해도 내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 끼 차려내면서도 생색이 여간했다.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워 수고했다 스스로 칭찬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가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 

임산부가 아니라 쌍둥이 엄마가 되었다는 것. 그것 말고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은 달라져버렸다. 분명한 건 자유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

마음먹은 대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생각한 일을 하는 것은 늘 어려웠고.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라곤 쥐어짜야지만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제한된 자유로움은 마음을 자꾸만 쪼그라들게 했다. 볼품없이, 이상하게.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분명한 위로로 하루를 버티곤 했다. 

     

아이가 자랄수록, 손과 발에 살이 포동포동 오를수록 자꾸만 어깨가 축축 처졌다.

몸도 마음도 바쁘고 가뻐서 정신 차리고 보면 밤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날이 쌓일수록, 밤낮없이 종종 댈수록, 아이를 키우는 일 말고 다른 건 일절 떠올리지 못하고 지낼수록, 이상하게도 하는 일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아이가 자라는 걸로도 채워지지 않던 허전함.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싶었던 날들. 

좋다가도 싫어지는 이상한 순간. 모든 건 쪼그라든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우울이었다.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섭섭함과 슬픔으로부터.

그런 날엔 아이로 인해 빵처럼 부풀어있던 삶의 기쁨은 까맣게 잊히곤 했다. 

실은 더 달고, 더 고맙고, 더 좋았는데도. 

웃을 일도, 설레는 날도, 기쁜 순간도 예전보다 더 많아졌는데도.

깊은 어둠 같은 지독한 시간은 종종 생겼다. 

 

하지만 긴 시간 괴롭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점점 그러한 것로부터 거리 두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것엔 분명한 까닭이 존재하였다.  

알 것 같기도, 또 모를 것 같기도 한 심통으로 내 안이 가득 찼던 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지던 날이면 더욱이 내게 빛이 되어 돌아왔던 말이 있다.  

그 위로의 말로, 온기로, 품으로, 스스로에게 내리꽂던 무용함이라는 손가락질을 거둬낼 수 있었다.



시부모님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차로 5분. 

일 하던 중간, 중간 몇 번이고 집으로 올라오셨다. 불편하다는 마음이 점차 사그라들었던 건, 나보다 더 불편하게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던 시부모님 때문이었다.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과 며느리 혼자서 둘을 보고 있으려면 얼마나 고될까 싶은 걱정과, 혹여나 불편해하면 어쩔까 싶은 염려 같은 것들이 뒤엉켜 시부모님 발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읽기 쉬운 마음이었다. 발걸음에도, 표정에도, 말에도 서려있었으니깐. 

그래서 이내 편해졌다. 벨 같은 건 누리지 않아도 상관없어졌다. 내가 나의 공간이라고 선을 긋지 않아도 며느리의 영역과 생활을 지켜주려 노력하셨다. 노력은 곧 마음이었고, 마음은 이내 전해지기 마련이니깐. 


식당 일을 하는 도중에 시간이 비면 잠깐씩 올라와 주었다. 잠시라도 아이를 보려고. 또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손에는 늘 반찬과 국, 밥 같은 게 들려있었다.       

힘들면 꼭 전화해, 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수고하고 있어. 밥 잘 챙겨 먹고. 네라서 안심이 된다. 

잠깐 밖에 있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그때마다 꼭 내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너라서, 너이기 때문에, 네 덕분이라고. 그 모든 말은 인정의 말로 나에게 되돌아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도, 어깨가 축 처져 있다가도 단단하게 반듯하게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나니깐, 나라서,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어. 내가 나에게 말해 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너라서 다행이라고 해 주는 말은 존재에 대한 다독임이 되었다.  

애나 보고 있다고 여겼던 하찮은 마음은 그들의 말 안에서, 나를 대해주었던 태도 속에서 다시금 반짝반짝 빛났다.

그 빛으로, 인정받고 존중받는다는 마음 때문에, 더 잘 살아내고 싶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나를 더욱 사랑해 주어야겠다는 다짐도.

     

가까운 이에게 받는 위로엔 단단하고 강한 힘이 있다.

특히나 애쓰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말하지 못하고 아등바등거리고 있는 경우엔 더욱더.

오늘도 만났고, 내일도 볼 사람에게서 듣는 다정한 말,  고마운 말, 위로의 말은 가끔 만난 이가 해 주는 그 어떤 좋은 말 보다 힘이 셌다. 

매일 일으켜 세워주는데, 매일 다독여주는데, 매일 끌어안아주는데. 아무렴. 올곧게 설 수밖에.     


가깝기 때문에 당연한 듯 함부로가 아니라 가까울수록 귀하고 소중하게.

매일 먹는 밥처럼, 좋은 말을 매 끼니 들을 수 있다면 마음이 불러서, 든든해서,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짊어졌던 돌덩이 같은 건 점심이면 번쩍 들어 저 멀리 집어던질 수 있다. 

매일 던지고, 던지다 보면 내 마음에 얹어둘 돌 같은 건 내 곁에 별로 남지 않는다. 그다음은 돌이 아닌 꽃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 

마음에 꽃을 얹어두며 살아가는 데엔 매일의 다정함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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