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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Aug 14. 2020

개똥과 웨딩드레스



나는 뭔가를 잘 잃어버린다. 그리고 실수투성이다. 생긴 건 찬찬하고 침착해 보인다고들 하는데, 성격은 의외로 급하고 늘 딴생각에 빠져있어 주변 간수를 어려워한다. 대학 때 한 번은 지갑을 일주일에 세 번 연달아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일상에서도 쏟고, 흘리고,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젊을 때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드물 정도로 산만했다. 


그런 내가 신부 사프롱을 세 번이나 했다. 요즘은 웨딩업체 직원이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은데, 예전에는 친한 신부 친구들이 맡아서 해주었다. 적령기가 되자 앞 다투어 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했지만 누군가 내게 샤프롱을 부탁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그것도 신부 셋이 샤프롱을 해달라고 청을 해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모두 거절했다. 하루 종일 신부 뒤를 따라다니며, 질질 끌리는 웨딩드레스를 깔끔하게 잡아주는 것은 물론 신부의 중요한 소지품을 챙기고, 부케를 맡아야 했으며, 그 외에 신부에 관한 모든 것을 도맡아 챙겨주는 그 막중한 일을 내가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모를 나의 실수로 남의 결혼식에 피해를 주는 일 따위는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내게 샤프롱을 부탁한 세 명은 고등학교 친구와 친척 언니, 회사 동료이었는데 하나같이 고집불통이었다. 스물아홉 봄이었고, 결혼식은 촘촘히 붙어 있었다.


더 이상의 거절은 배반으로 치부될 지경에 이르러 나는 세 건의 샤프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결심했다. 완전히 긴장한 채, 첫 번째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이 무사히 지나갔다. 결혼식 후엔 녹초가 되었지만 큰 실수는 없었고, 연이은 두 번째 친척 언니의 결혼식까지 이상무였다. 신경을 바짝 쓰고 있었더니 나름 침착해졌고, 생각지도 못했던 순발력까지 발휘되어 아예 전문 샤프롱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까짓 별거 아니었다. 나도 사실은 주변을 잘 챙기고, 찬찬하기 그지없는 침착한 여자였던 것이다. 자신감이 생겨났다.  

   

마지막 회사 동료의 결혼식은 이른 아침 도산공원에서의 웨딩촬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날씨는 좋았고, 공원은 아름다워서 야외 촬영의 조건으로는 최고였다. 함께 골랐던 친구의 웨딩드레스는 장식이 거의 없는 심플한 디자인이었는데 햇빛을 받으니 그 자체로 하얗게 반짝였다. 그리고 나는 앞선 두 번의 경험으로 신부에겐 최고의 조력자로 성장해 있었다. 목이 마를까 봐 빨대를 꽂아 미리 준비해 간 음료를 친구에게 건네니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며 만족 해 했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어느새 마지막 순서로 샤프롱인 나와 친구의 투샷만이 남아 있었다. 포토그래퍼는 큰 나무 밑에 둘이 다정하게 앉아달라고 포즈를 부탁했다. 나는 일단 웨딩드레스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디밭에 활짝 펼친 다음 엉거주춤 친구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구도가 이쁘지 않다며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서라는 사인을 받았다. 내가 더 다가가면 웨딩드레스가 구겨질까 봐 걱정이 된 나는 아예 신발을 벗고, 살짝 친구의 웨딩드레스 위로 올라앉았다. 아주 잠깐이었고, 찰칵 셔터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웨딩드레스에서 비켜났는데, 잔디밭에서 일어선 친구의 웨딩드레스 자락이 뭔가 이상했다.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그 깨끗하던 순백의 드레스 자락에 뭔가 선명한 자국이 남았는데, 정체는 개똥이었다. 개똥이 놓여있던 그곳에 하필 내가 올라앉아 뭉개버린 것이다. 신부도 곁에 있던 신랑도 촬영 팀 모두가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개똥을 묻히다니....





그다음부터 거의 지정신이 아니었다. 결혼식 시간은 다가오고, 저 상태로 신부 입장을 할 수는 없었다. 미친년처럼 공원 앞 편의점으로 뛰어가 주방세제와 수세미를 사 왔다. 아무리 많은 실수를 해봤어도 이런 실수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웨딩드레스에 묻은 개똥을 닦아내는 내내 손이 벌벌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충 지워지긴 했는데 자국은 남았다. 예식장으로 이동한 후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수세미와 휴대용 다리미를 든 채 안간힘을 썼다. 이건 미안하다고 말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어서 사과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표시가 나긴 했지만 친구는 어쨌거나 개똥 자국과 함께 신부 입장을 했다.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지만 끝까지 샤프롱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내게 친구는 화를 참고 편하게 대해주었다.      


역시 샤프롱은 내 몫이 아니었다. 끝까지 거절했어야 했는데,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어이없는 결혼식을 만들어 버렸다. 그날 함께 찍었던 투샷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결혼식에서 신부의 웨딩드레스 자락을 보면 그때 일이 생각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 실수 한 두 개쯤은 가질 수 있다고 애써 위안해 보지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절대 만나서는 안 될 개똥과 웨딩드레스의 조우는 내가 저지른 어이없는 인생 실수 탑 텐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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