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을 싫다고 선택할수 있는 자기결정권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자기표현의 꽃, '거절'

by 남정하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순하고 해맑아서 집에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 직장 생활하느라 시어머님이 두 돌까지 키워주셨다. 만 3세 때 데려와서 키웠는데 나랑 기질이 달라서 아이가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다. 지금에야 " 알았어, 알았어요. 조금 만요 이따가요. " 하는 아들의 여유로운 천성이 간섭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속도대로 평온하게 살아갈 힘과 권리가 있음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싫다고 하는 법이 없는 아이에게 친구 집 갈 때 동생 데리고 가라고 시키고, 놀러 갈 때 꼭 딸려 보낸 적이 많다. 경쟁심이 별로 없는 큰 아이는 눈치 빠르고 머리 회전이 비상한 동생이랑 게임을 하면 이긴 적이 별로 없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큰 아이와 결정과 행동이 빠른, 또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실행하는 데 능한 엄마와는 대체로 상극이었다. 이러다 보니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말해 봤자 엄마가 트집 잡고 엄마 마음대로 할 걸 알게 되었다.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 뭐 먹고 싶어? " 물으면 대충 얼버무린다. 웅얼 웅얼 대답할 때 다시 묻는다. " 크게 말해봐, 안 들리잖아. 네 의견을 말하라고!" 약간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 아무거나 괜찮아요. 엄마 먹고 싶은 거 먹으세요" " 엄마 먹고 싶은 거 먹겠다는 얘기가 아니잖아. 네가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그러니까" 하면 "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다 괜찮아요"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친구들이랑 PC방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 2 때였나 보다. 책상 앞에 앉아 있길 좋아하는 성향이다 보니 게임하는 걸 즐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 엄마, 애들이 PC방 간다고 하는데 갔다 오도돼?" 속으로 중학교 올라가서 엄마한테 게임하러 갈 때 허락받고 가는 아들이 대견했다. 부모 눈 속이고 초등 고학년부터 게임하러 다니고 19금 동영상보다 걸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너무 늦지는 말고 다녀오라는 말을 전하는 사이 친구들 하는 말이 들렸다. " 야~ 뭐야. 너 아직까지 엄마한테 보고하고 다니냐? 마마보이 아냐? " 초등학교를 1살 일찍 들어가서 다른 아이들 사춘기라 목소리가 굵어지고 코밑이 거뭇거뭇 해졌지만 큰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 생 같아 자주 놀림당했다. 장난을 잘 치고 심각한 일이 별로 없는 데다 중학교 올라갔는데 사춘기 징후가 전혀 없어 여전히 아이 같았다. " 한 살 어리잖아. 우리가 봐줘야지, 같이 끼워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 그러고는 뭘 그런 걸 부모한테 물어보냐고 다음부터 물어보면 갈 때 안 끼워준다고 했다. 창피하다면서 너 때문에 자기 엄마한테 뭐 하고 다니는지 알려질게 뻔하다고 짜증 냈다고 한다.





그 일 이후 충격을 받았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은 내가 만든 환상이었구나.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놀이문화가 있고 그 시기 이루어야 할 발달과업이 있는데 그걸 내가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이 됐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질문을 담임이 했는데 대답을 잘 못했다고 했다.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지, 뭘 싫어하고 뭘 하기 싫은지 묻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두리뭉실 얼버무렸다고 한다. 이런 질문이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직업을 찾아 전공을 정하고 공부하는 출발이라고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뭘 원하는지 물어보긴 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고 아이 편에서 아이가 원하는 걸 함께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모든 기준이 엄마인 나의 취향과 선택, 결정이었다는 반성이 있었다. 대답을 늦게 한다고 화내고, 자신의 의견을 얼버무려 이야기한다고 혼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춘기 시기는 온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간이다. 주변 부모, 학교 선생님, 친구들이 자신에게 어떤 칭찬과 평가를 하고 있어도 그 모두를 부정하고 거부한 채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시기다. 당연히 거절하고 거부하고 반항해야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살고 싶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부모의 말을 거절하거나 거부하지 못한다면 그 힘이 아직 아이 내면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아이 성장을 막고 있는 엄마가 나였다. 착한 아들, 말 잘 듣는 아들이라고 좋아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다음부터는 친구들이랑 게임방 갈 때 엄마한테 허락 안 받아도 돼. 크게 비뚤어지거나 엄마가 걱정할 정도의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대신 돌아올 시간이 언제쯤 일지 메시지로 간단하게 알려줘" 큰 아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분야가 있고 재능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있게 시작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뭔가를 하겠다고 몸과 마음을 던지는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느껴졌다. 성장의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결과와 상관없이 시도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꼭 될만한 일만 시도해서도 안된다. 해봤더니 이건 확실히 아니더라라는 실패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간다.





정신과 의사 김 요한 선생님은 거절은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 예 ” 뿐 아니라 “ 아니오 ”라고 말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은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이 싫은 것을 싫다고 하고 거절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 늘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나서 “ 내가 잘못했나?” “ 다른 생각을 말해서 싫어하면 어떡하지?” 죄책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선택하고 거절할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 “ 아니요 ” “ 싫어요 ” “ 안돼요 ”라고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자신의 생명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말할 권리는 자신 일에 대한 의사졀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자기 존엄성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을 넘기는 것은 자기 존엄성을 포기하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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