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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Oct 22. 2023

꼬리뼈의 진실

아기를 낳은 지 눈물의 100일이 지났다. 100일의 기적이 아닌 눈물의 100일이었다.

물론 나의 아기는 기적이었다.

50일경부터 5시간 이상씩 통잠을 자기 시작해서 100일에는 8시간을 넘게 자고 있다. 또 먹는 양도 쑥쑥 늘고 수유텀도 자연스레 늘었다. 몸무게도 처음 걱정과 달리 영유아 검진에 가면 상위 몸무게를 자랑할 정도로 건강체질이다. 아기가 이렇게 건강하게 쑥쑥 컸는데 왜 눈물의 100일인가?

내가 울면서 키울 수밖에 없었다.

국가 산후도우미가 끝나면 아기를 봐줄 사람은 없었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계획한 대로 함께 출근할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가지 제도들을 찾아보았다.


일단 어린이집은 대기도 길고 1개월이 갓 넘은 아기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다음은 시간제 보육.

이것도 소득에 따른 차등 지원으로 우리는 지원을 제일 많이 받을 수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강아지가 있는 집에 오려고 하는 도우미를 구할 수 없었다. 학원으로 도우미를 불러서 아기 수유와 기저귀만 갈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이건 지원을 해 줄 수 없단다. 우리 집과 직장이 행정구역이 달라서 어렵다고 했다.

이 또한 패스.

결국은 내가 직접 구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2일은 엄마 친구분이 댁에서 봐주시기로 하고, 나머지 3일은 학원으로 올 수 있는 시터를 구했다. 다행히도 엄청 좋은 시터를 만나서 우리 아기를 아낌없이 사랑해 주셨다.


이렇게 매일같이 아기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 오전에는 온전히 나 혼자 육아를 하고, 오후에는 아기를 바구니 카시트에 태워 번쩍 들고는 직접 운전을 해서 출근을 했다. 엄마 친구는 믿음직했고, 시터 또한 든든했다. 학원으로 데리고 가는 날에는 수업이 빈 시간에 언제든지 아기를 볼 수 도 있었다. 임신 때도 바빴던 남편의 회사는 전혀 한가해지지 않았고, 새벽출근에 출장은 더 늘어났다. 얼마 못 자는 남편을 위해 아기 밤 수유는 내 차지가 되었고, 혹시라도 밤에 울거나 할까 봐 아기를 안고 거실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날 보는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며 몸조리에 대한 설교를 했지만, 무거운 카시트를 번쩍 들고 다녀야 하는 현실에서 도와주지는 못했다.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항상 더 보고 싶고,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그렇게 눈물의 100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0일을 기념으로 정형외과에 검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출산 때 그렇게도 날 힘들게 했던 꼬리뼈 검사를 받고 싶었다. 이제 100일이나 되었으니, 그리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키웠으니 아기와 함께 병원에 간다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실은 꼬리뼈가 정말 이상했다. 다들 그럴 수도 있다는 말뿐, 산부인과 산후 진료와 검사에서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출산 후에 침대에 눕는 것, 누워서 자세를 바꾸는 것, 누워서 일어나는 것 모두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조리원에서 그곳에 힘을 주지 못해 실수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자괴감에 울면서 빨래를 했었다.

그렇게 징글징글 아팠지만, 괜찮다고 하기에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운전할 때 방석을 깔아야 하고 맨바닥에는 앉을 수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하고 좋아지는 것 같았다.


100일을 기점으로 병원을 가보고 싶었던 건 다시 아프기 시작해서였다.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좋아지던 통증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상태였다.

꽤 큰 정형외과.

CT를 찍고 진찰실에서 들은 이야기는 속상할 뿐이었다.

골절 흔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다 붙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랬다.

난 출산 시에 꼬리뻐가 골절이 된 것이다.

그 상태로 쉬지 않고 육아를 하고, 아이와 출근을 했다.

이미 붙은 그 꼬리뼈는 왜 지금도 아플까?

골절될 때 손상된 인대를 디스크가 누르고 있어서라고 했다.

크게 치료방법이 없다는 말과 통증을 한방에 없애주는 주사가 있다고 했다.

대신 그 주사를 맞으면 2일은 누워서 꼼짝도 못 한다는 것.

누워있으면 아기는 봐줄 사람이 없다.

어차피 골절된 것도 다 참고 일했는데 이미 붙었는데 뭘 못 참을까?

그렇게 치료는 없이 새로운 사실만 듣고 진료는 끝났다.


진료 후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할 때,

'붙었으면 다 나은 거 아니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살인충동을 느꼈다.

지금도 꼬리뼈는 아프다.

맨바닥에는 앉기 힘들고, 내가 운전하는 차가 아니면 방석을 깔고 앉아야 한다.

다른 산모들이 앉는 도넛방석이 아닌 목쿠션이다.

한쪽이 뚫려 있어서 그 부분이 뒤로 가도록 앉으면 통증부위에 접촉이 없어 앉을 때 편안하다.

언제까지 아플 건지 정말 궁금하다.

지금 아기는 돌이 지났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냥 통증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난 엄살쟁이가 아니었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랬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언제 아무렇지도 않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기를 위해서 씩씩하게 움직인다.

딩크였던 과거가 엄청나게 오래된 기분이다.

그 과거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난 아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엄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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