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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Oct 19. 2023

조리원이 천국?

조리원은 천국이다. 출산 후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곳. 아쉽게도 나는 천국을 잘 누리지 못했다. 천국인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도 지금도 천국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조리원은 계획에 없었다. 국가 산후도우미를 신청하고 출산 후 최대한 빨리 복귀하는 것이 목표였다. 뭐든 내가 알아서 척척 준비하기에 더 관심이 없었던 남편은 조리원을 예약하지 않았단 사실에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본인이 맘에 드는(?) 곳들로 리스트를 뽑아서는 알아보러 가보자고 했다. 날 생각해서 시설이 좋은 곳과 본인을 생각해서 남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곳들. 그렇게 예약한 곳. 물론 가서 보기도 했지만 제일 저렴한 곳으로 이미 마음을 정해둔 뒤였다. 아쉽게도 남편 출입은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지만 친정에서 가깝기에 심적으로 끌렸다.


그렇게 출산 후 간 조리원. 산부인과에서 차로 15분 거리이지만, 몸이 불편한 난 남편과 운전으로 툭탁거리며 왔다. 아기는 바로 신생아실에 입성. 신생아실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밖에서 볼 수 있었다. 내 방은 신생아 실과는 다른 층이었다. 신생아실과 다른 층이라 조용해서 쉬기에 더 좋을 거라는데, 그냥 없는 장점을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느낌이었다.


도착하면 짐을 풀기도 전에 누울 줄 알았다. 그러려고 오는 곳인 줄 알았다.

내가 예민한 건지 여기가 유별난 건지.

아님. 첫날이라 그런 건지 전혀 쉴 수가 없었다.

실장님은 신생아 케어를 가르쳐 준다며 한참을 설명. (본인이 퇴근하셔야 해서 그전에 설명해주고 싶단다.)

여기저기 서류랑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불려 다니고. (층이 달라서 번거로웠다.)

마사지실에서는 모유수유하려면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고 콜. (서비스마사지를 소진하고 영업을 하기 위한.)

그 와중에 시댁 단톡방은 아기 사진 보내달라고 폭주 중. (물론 답장은 남편몫이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임.)

오면서도 계속 불편했던 꼬리뼈는 이제 한계치였다.

눈앞에 침대를 두고도 제대로 앉아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시달리니 너무 서러웠다.

서럽게 울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픈 건 여전했고, 단톡방은 어쩔 수 없단다.


첫날의 힘겨움이 차차 나아진다기보다는 익숙해져 갔다.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어도 회복되지 않아 보이는 모습에 조리원 선생님들과 남편에게 반 강제로 끌려가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았다. 씩씩하게 원래대로 돌아가겠노라 잘 먹고 싶었지만 임신기간부터 힘들게 했던 입병은 출산 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초유만이라도 꼭 먹이고 싶다며 열심히 유축하느라 밤에도 통잠은 잘 수 없었다. 너무 졸리고 힘들어 시간을 몇 번 놓친 결과 젖몸살도 거하게 한번 앓았다.

꼬리뼈는 너무 힘들다며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었지만 이상이 없단다. 정형외과 전문의도 없는 병원이라 좀 더 전문병원에 가보고 싶었지만 모두가 말리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그냥 난 엄살을 부리는 산모 중 하나가 된 것이었다.

신생아 실에서 유일하게 며칠 동안이나 몸무게가 늘지 않는 우리 아기. 괜스레 내 탓 같이 느껴지는 건 산후우울증이라고 한다. 황달까지 의심되어 검사만 두 번. 아쉽지만 그 덕에 모유까지 끊게 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표 관리를 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학원의 짧은 방학이 끝나 버렸다. 학부모님들과 연락을 하고, 시간표 관리를 했다.

학원에서 수업을 할 선생님에게 알려드리고 또다시 레슨 스케줄 관리.

출산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그만둘 거라는 걸 예감했지만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없기에 틈틈이 관리를 했던 것 같다.


집에 가면 쉬지 못한다며 지금을 즐기라고 했다. 모두가 그랬다. 하지만 조리원에서는 나름의 할 일들이 있다. 여기에 나는 일도 했다. 학생 한 명이라도 더 잡아보려고 아등바등했다. 내 대신 학원을 지키는 선생님의 수고가 고마웠지만 하루에 학생이 많아도 4~5명뿐이었다. 내가 수업을 하지 못하니 못 오는 아이들도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페이와 월세와 관리비 등등 지출만이 머릿속에 그려져 초조해져 갔다. 그렇게 몸도 아기도 학원도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수없이 좌절하며 시간만 지나갔다.


내가 조리원에 있는 기간에 내내 비가 내렸다. 정말 많이 내렸다. 밤에는 천둥번개도 쳤다. 내가 딱 좋아하는 형태의 비였는데 그땐 너무나 우울한 기분이었다. 갇혀서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속상하기만 한 조리원 왜 왔나 후회도 많이 되었다. 하지만 남이 해주는 밥, 빨래, 청소 이것만으로도 큰 일이긴 했다. 또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는 일들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소통을 할 순 없었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였다면 정말 위험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친절했던 신생아실 선생님들도 계속 생각날 만큼 고마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현실을 내려놓기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은 편하게 있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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