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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Oct 13. 2023

너와 첫 만남

예정일은 8월 초.

영화를 좋아하는 남편의 아기가 태어나면 언제 또 극장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임신 중에 심야영화를 몇 번 보러 갔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든 것이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

그날도 잠이 잘 오지 않은 컨디션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애매한 상태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뽁?!'

'물컥'

'!!!!!!!!!!!!!!!!!!!!!!!!!!'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역시나 양수가 터진 게 맞았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병원에 전화를 해 상황 설명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를 받았다.

차분하게 남편을 깨우고 미리 준비해 둔 출산가방과 필요 소지품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한동안 만나지 못할 강아지와도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예정일 보다 열흘 앞선 날이기에 방학을 할 수 없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직접 해야 하는 유아수업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취소 연락을 드렸다.

또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업무부탁을 했다.

양수는 터졌지만 진통이 없어서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그놈의 코로나.

남편이 없이 혼자 들어가야 한단다.

병원에 도착한 뒤로 멍한 상태가 되었는데 직접 사인을 하는 것이 왜 이리 많은지.

이런 것들은 보호자가 하는 줄 알았다.

양수가 먼저 터진 탓에 감염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또 유도제를 맞았다.

무통도 맞으라고 사인을 받아가서 이것저것 주삿바늘을 찌를 일이 많았다.

그 밖에 분만치욕이라 불리는 일들이 휙휙 지나갔다.

솔직히 엄청 치욕적이거나 하진 않았다.


혼자 있는 게 심심해질 때쯤 유도제가 잘 들었는지 진통이 시작되었다.

언제까지 혼자 있으면 되는 건지.

혼자서 참을 수 없을 때쯤 간호사를 호출했다.

그제야 사람구경을 하나 싶었는데

남편을 불러줘서 가족 분만실로 옮겨졌다.

무통을 선사해 주시고는 남편과 둘만 남겨둔 채 다들 사라졌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는데.

누워있는 나보다 더 초조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을 진정시켜야 했다. 뭔가 뒤바뀐 느낌.

진정이 되기 시작하니 자꾸만 어른들한테 연락을 한다는 남편.

그냥 애기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물론 말을 듣지 않아서 분만실에서 시댁 단톡방 폭주와 친정엄마의 전화가 왔다.

아무것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냥 전화가 울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무통의 신세계가 사라지고 진통이 강하게 오기 시작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으니 남편과 힘주기를 하고 있으란다.

왜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고 금방들 사라지는지.

우리 둘이 유튜브로 본 힘주기를 열심히 할 뿐. 분만도 예습을 했어야 하는구나.

심지어 우리가 하는 것이 맞는지 틀린 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이 날이 우리 병원에서 분만하는 산모가 많은 날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담당 선생님이 얼굴을 비추고 가서 안심은 되었다.

평일 오전이라 담당선생님이 아이를 받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간호사를 비롯한 분만실 스텝들은 죽을 것 같이 아플 때 들어왔다.

이제 아기가 나올 때쯤 담당 선생님도 오셨다.

순간적으로 호흡 곤란이 와서 산소호흡기를 급하게 끼워 줬다. 너무 커서 하나도 소용이 없었지만.

금방 다 된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 같은지.

'허리가 너무 아파요. 못하겠어요.'

몇 번 이 얘기를 하고 난 후 아기가 나왔다.

탯줄 자르는 거 무섭다던 남편은 얼떨결에 탯줄을 잘랐다.


아기가 나오고 나면 한번 더 넣어준다던 무통으로 정신은 멍해도 통증은 사라졌다.

무통 덕인지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실까지 휠체어를 타고 가라고 한다.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로 병실까지 편하게 이동했다.

바득바득 우겨서 병실은 3인실.

산부인과에는 길게 있지도 않을 텐데 병실마다 비용차이가 많이 나서 아까웠다.

이 날 산모들이 많았음에도 다들 1인실이랑 특실로 가서 3인실을 혼자 사용했다.

이건 뭐 넓은 1인실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행운인지 퇴원할 때까지 난 그 병실을 혼자 사용했다.


무통이 서서히 빠지고 저녁식사를 하고.

이상함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남편도 간호사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내 몸은 이상했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말해도 엄살이 되는 상황.

누워서 자세를 바꾸는 일도 일어났다 눕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오래 걸렸다. 보는 사람마다 그럴 수 있다는 말뿐.

난 정말 엄살쟁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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