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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Oct 12. 2023

계획형 엄마

엄청나게 계획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즉흥적인 것도 아니다.

아프고 걱정된다고 해서 멍하니 있을 것이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한다.

철딱서니 딩크부부에서 이젠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니 말이다.


처음에 제일 후회한 일은 코로나로 힘들었을 때 학원을 정리하지 않은 일이다.

어릴 때부터 봐 온 갈 곳 없는 입시생들, 내가 좋아서 다니는 일반 학생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정과 책임감.

임신을 하고 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막막했다.

더군다나 전임 선생님도 벼르던 대학원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

철저하게 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처럼 학원에 정기 연주회도 열고 출산 전까지 열심히 레슨을 하기로 했다.

마침 예정일은 8월 초. 그즈음에 방학을 하고 일주일만 쉬고 돌아오겠다고 생각을 했다.

임신을 했다고 미리 말을 해도 그 학기 초에는 이상하게도 유아 수업이 많이 들어왔다.

무거운 몸으로 아이들과 뛰고 북도 치고 춤도 추고.

형님반 아이들의 정기 연주회 준비까지 임신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적당히 운동을 해야 아기가 많이 크지 않는다고 한다.

난 빨리 복귀할 생각이니 회복이 빠른 자연분만을 하려면 아이 몸무게를 잘 유지해야 한다.

우리 부부는 함께 복싱을 했었다.

물론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하는 즐거운 취미이다.

임신 6개월까지는 계속 복싱을 했다.

무리가 가는 동작을 제외하면 임산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심난한 와중에 오전에 강아지와 산책, 저녁에 남편과의 복싱 체육관이 아니었다면 잡생각만 많았을 것이다.


알고 있지만 모르고 있는 것들.

임신과 분만에 대한 정보는 함께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너무 많았고, 또 내용도 어려운 것 같았다.

분만에 대한 내용은 다들 겁난다고 해서 걱정되었는데, 난 또 씩씩한 편이라 그런지 그다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이런 건 친정엄마 닮는다는 소리가 있어서 그런지 약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랑 동생을 둘 다 비교적 쉽게 출산하셨다는 얘기를 해 주셔서 그랬나 보다.


국가 산후 도우미를 알아보고, 그분을 최대기간 신청하기로 했다.

아기를 맡기고 출근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 기간이 끝나면 나라에서 운영하는 시간제 시터를 신청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소득이 낮은 편이니 나라에서 하는 혜택은 다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우리나라 제도가 잘 되어있다며.

아기가 생기니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너무 몸이 무거워지기 전에 아기 용품도 다 준비해 두고.

학원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 두고.

미리미리 출산가방까지 준비해서 집 한편에 세워 두었다.

나름 이것저것 철저하게 대비했는데

내 계획대로 준비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왜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지.

그래도 이렇게 준비해 두지 않았다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예측 불가의 상황에 나름의 임기응변으로 돌려 막기를 했지만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울면서 다닌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 계획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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