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눈에 가려진 칼날의 겨울

봄에 새싹을 틔우기 위한 혹한 속 버팀

by 에이첼

한 겨울에 내리는 폭닥한 눈송이들은 마치 포근할 것만 같은 이미지다.

쌓여있으면 푹신한 호텔의 침구같이, 색깔조차 때 묻지 않은 하얀색.


폭닥하게 내리는 눈송이들이

땅에 하얗고 포근하게 쌓이면,

땅 속은 눈에 가려져 더욱 차가워진다.

그 땅 속에는 내가 웅크리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이

한 겨울,

하얀 눈이 가득 쌓인,

차디찬 땅 속 웅크린 나의 기나긴 시간이었다.


이별의 아픔보다 더 아픈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죄책감의 무게는 땅 위로 올라오지 말라는 명령과도 같은 무게였다.


이미 헤어진 연인이나 이제는 동료로서 회사를 꾸려나가야 하는데,

이 망할 죄책감은 나에게 이미 발목 잡혀 움직이지 못하던 전 연인의 어깨 위에

나의 무거운 몸뚱이를 얹어놓았다, 책임감이 강한 그에게.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회사는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회사가 제법 굴러간다고 좋아하던 전 연인의 모습이 나의 죄책감을 벗겨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더 깊은 땅 속으로 파고들어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나조차도.


회사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내가 일을 잘 해내는 것도 아니었고,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는 듯했다.

헤어진 뒤의 시간은...

우리의 사이를,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사이가 될 만큼의 간극을 만들어냈다.


잘하지 못하는 날이 점점 더 늘어났고

그것은 나 자신이 사라지기에 충분한 날들이었다.


사라지고, 사라지고......

없어지고 싶다.


그런 투명한 시간 속에서 나는 사라질 준비를 시작했다.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그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닿는 방법을 찾았다.

나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빨간 리본이 손목에 한 개, 두 개, 열개... 이상이 묶이기 시작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어둠 속에 살고 있었다.


이런 나의 쓸모는 대체 무엇일까?

대체 어떤 쓸모가 있길래 이 세상에 나왔을까?

없을 것 같은데...

없으면 어떡하지...

없으면...


10년의 시간은 차디찬 땅 속 지쳐가던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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