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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4. 2023

15. 존버

버티는 자 살아남는다!




얼마 전 친정 부산에 갔었다.

친정 아빠는 현재 폐암 투병 중이다.

가끔 엄마와 통화를 하면 요즘 아빠가 힘도 없고

멍하니 오랫동안 앉아 있기를 반복해서 걱정이라고 하신다.

걱정이 되어 내려갔더니 우리는 덥다고 햇빛 근처는 얼씬도 않고 에어컨 밑에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아빠는 마당 테라스에 파라솔 하나를 펼쳐놓고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몇 시간을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엄마 말에 요즘 부쩍 저러고 있다고 한다.


폐 쪽으로 암이 더 전이가 되고 다른 장기 쪽에도 불편함이 생기면서 아빠의 마음은 많이 약해졌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잘 모른다.

아빠는 가족이 걱정할까 봐 이렇다 저렇다 말씀도 아끼신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나가 해드릴 게 없는 내 자신이 한 없이 보잘 것 없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빠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인지 텃밭은 꾸준히 가꾸신다. 마당에 오이며 가지, 고추, 부추, 파 등 온갖 야채들이 자라고 있다.

친정 가면 아빠가 가꾼 채소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그날도 마당으로 내려가 아빠의 자식 같은 채소들을 구경했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오이의 덩쿨손

늘 호박, 수박, 오이의 덩쿨손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그마한 식물이 어떤 힘이 있길래 저렇게 꼬불꼬불 작은 줄로 꽉 붙잡지?' 늘 신기하기만 했다.


아빠 텃밭의 오이가 쭉 쭉 뻗어 나가기 위해 아빠가 세워준 쇠봉을 단단히 휘감고 나아가는 모습에 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빠가 세워준 봉이 없었다면 오이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또 다른 지지대를 찾아 악착같이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아빠는 지금 힘든 길을 걸어가고 계신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아빠 옆에 있는 엄마와 그리고 우리 3남매가 있으니 오이의 덩쿨손처럼 우리를 의지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그 시간은 힘들고 더디겠지만

오이가 힘들게 힘들게 덩쿨손을 만들며 나아가며 꽃도 피고 열매를 맺듯이 아빠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활짝 웃어주시며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진심을 담아 '버텨 달라고.... 버틸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빠  아빠는 할 수 있어요

우리 버텨봐요


#디카시 #디카에세이

#바카시 #디카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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