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자까 Jan 24. 2023

결혼(結婚) : 전직장 팀장님 소개로 결혼까지 간 썰

나의 결혼 이야기

 작년 9월 24일 초가을, 모두의 축복 속에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전직장 팀장님의 소개를 통해서 만난 사람이다. 전직장에서 팀장님의 무리한 업무지시로 매일 같은 야근에 시달리던 어느 날 팀장님께서 나에게 말을 거셨다.


"O 사원. 혹시 요즘에 만나는 사람 좀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래? 내가 조만간 좋은 여자 한 명 소개해줄게 괜찮지?"

"...... 예?"


  이것이 병 주고 약 주고인가. 나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일을 떠넘겨 야근생활을 반복시키게 한 범인이 갑자기 여자를 시켜주겠다고 다.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라 빈말로 알겠다고 했지만 반년이 지나도 말씀이 없으셨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늦은 야근을 끝내고 본가로 내려가는 중 팀장님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O 사원. 지금 뭐 하나?"

"△△프로젝트 자료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 그래......? 지금 잠깐 멈추고 갓길에 차 좀 대고 있어 봐. 금방 내가 다시 전화 줄게."


 툭. 본인 할 말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으신다. 졸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나는 잠시 한쪽에 차를 대고 기다리던 중 울컥 화가 났다. 황금 같은 금요일 저녁에 야근한 것도 억울한데 쉬는 것도 내 맘대로 못하나?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이러는 건지 퇴근 후 집에 가는 사람을 붙잡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5분 정도 기다리니 다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여자 소개해준다고 한 거 기억나?"

"예......? 아....... 예."

"그 처자 지금 내 집에 와있다. 차 돌려서 냉큼 온나."


  갑작스러운 전개에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 마냥 어질어질했다. 생각지도 않던 소개팅이라니. 장소를 팀장님의 집에서 한다는 점은 좀 특이했지만 내 마음속에 분노가 한순간에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팀장님 집으로 향했고 도착한 그곳에는 팀장님 부부, 같은 팀 과장님 부부, 못 보던 여자 두 분이 계셨고 그중 한 분은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아. 저분이구나.'


 그녀를 본 것도 잠시.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테이블에 깔려는 무수한 술병들이었다. 알고 보니 팀장님 부부와 같은 팀 과장님 부부 그리고 여교사 선생님 한 분은 예전부터 잦은 술모임을 가진 관계로 여교사 선생님 학교에 이번에 새로 전입 온 젊은 선생님 한 분과 내가 초대된 것이었다.

 아니, 초대가 아니라 술안주로 불려 온 것이었다. 처음 보는 젊은 남녀 두 명이 풋풋한 분위기 자아내며 어색해하는 것을 이 중년의 부부들은 어찌나 재밌어하는지 우리에게 끊임없이 술을 먹였고 자비 없는 술 넘김은 그날 기억을 깔끔하게 날려주었다.

 다음 날, 나는 내 차에서 눈을 떴고 못 보던 차 키 하나가 뒷 좌석에 떨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고 그녀도 술을 너무 마셔 정신이 없던 탓에 내 차에 흘리고 간 것이었다. 덕분에 차 키를 돌려주는 것을 계기로 연락을 계속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결혼까지 갈 수 있었다.




 흔히들 결혼준비 중 많이 싸운다고 한다. 우리 역시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근검절약한 아내와 달리, 나는 돈을 쓸 때는 써야 한다는 주의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져보고 구매를 결정해야 하는 나와달리 아내는 그날 방문한 매장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기본 성향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 또한 다르다. 30년 넘게 살아온 성격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혼은 그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 맞춰갈 자신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결혼 전 동거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결혼 전 1년 6개월가량 동거생활을 하며 서로의 날것(?)의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정했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는 게 막연한 끌림이 아닌지 수십 번 되물으며 함께한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기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이러한 대중들의 마음을 반영하여 럭셔리 솔로 라이프에 대한 환상을 제공한다. 타인과의 대립, 감정소모에 지쳐 버린 우리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 간 마음의 울타리를 친 차가운 세상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인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본래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지내는 세상이라고 한다.

 각자 본인의 삶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말이 더 이상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여러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전 06화 개심(改心) : 직장에 대한 인식의 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