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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프리 yefree Jul 03. 2022

‘되고 싶다’와 ‘하고 싶다’의 차이


* 이 글은 세바시에 출연한 타일러 라쉬의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면 ‘박스’를 탈출하라> 편을 보고 쓴 저의 단상입니다.

생각해볼 지점이 많으니 한 번씩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명사

내 앞에 흰 도화지와 크레파스가 놓여 있다. 칠판엔 ‘나의 장래희망 그리기’라고 쓰인 글씨가 보인다. 나는 고민을 조금 하다가 선 생 님이라 적고 그 밑에 그림을 그렸다.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많은 직업을 알지 못했고 새로운 것을 떠올릴 상상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친숙한 직업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곤 앞에 나가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선 생 님이 되고 싶 습 니 다”


머리가 굵어졌을 땐 꿈의 명사가 달라져있었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 글 쓰는 걸 좋아했고 무엇보다 조명받지 못하는 사회 문제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그 어떤 정의감도 있었다.


형용사

지금 와 생각해보면 기자란 직업에 따라붙는 형용사가 탐이 났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위상이 많이 떨어져 기레기란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적인, 논리적인, 똑똑한, 신뢰성 있는’과 같은 말들이 기자란 직업을 꾸며준다고 생각한다.


동사

동사가 아닌 명사의 형태로 꿈을 꾸게 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그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 경우, 세상 모든 게 다 끝나는 줄 안다. 기자의 꿈을 접었을 때 내 인생에서 글쓰기란 행위는 두 번 다시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비록 매스컴은 아니지만, 다양한 플랫폼에서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강연에서 타일러는 말한다. ‘되고 싶다’는 우리의 꿈을 좁은 박스에 가둘 수 있다고.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 믿는다. 물론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까지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꼭 직업으로 꿈을 이뤄야만 성공한 건 아니다. 비록 그 형태는 조금 다르더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성공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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