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처음은 서투니까
사람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피 같은 20만원이 증발되니, 속이 쓰려 견딜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산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영화 엔딩크레딧까지 보고 노트북을 닫았다. 시곗바늘은 밤 12시 정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새벽 1시 50분에 공항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으니, 넉넉히 2시간이나 남았다.
이쯤에서 몇 번 게이트웨이로 가야 하는지 한번 볼까? 하고 꼬깃꼬깃 접어둔 비행기 표를 펼쳤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숫자가 적혀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은 죽기 전에 주마등처럼 기억을 떠올린다는데, 인천공항에서부터의 기억을 필름 되감듯 떠올려보았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라면 분명 데스크 직원이 구몬 선생님처럼 빨간 색연필로 표시를 해주었을 텐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료 와이파이가 안 되니, 가족에게 SOS를 요청하기 위해 정말 잠깐 데이터를 켜고 카톡을 보낸 게 다였다. 그것도 데이터 폭탄을 맞을까봐 메세지 하나 보내고 바로 데이터 끄고, 답장 왔나 확인하려고 카톡을 1초만 열고 바로 껐다. 아직 답장을 받진 못했지만, 이대론 20만원도 모자라 50만원어치 요금 청구서를 받게 될까 봐 휴대폰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니, 화려했던 가게들이 하나씩 조명을 끄고 새벽의 정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침착하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댔잖아. 아까보단 사람이 줄긴 했지만, 아직 저기 유니폼을 입은 공항직원이 있네. 가서 물어보자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재빨리 털어내고, 지나가던 3명의 공항직원을 급히 잡아 물어보았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쏘리.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 라 말하곤 사라졌다. 이후에도 몇 명에게 더 물어보았지만 끝끝내 게이트웨이의 묘연한 행방을 찾을 순 없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수명도 그만큼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분명 여기는 문명화된 곳인데 마치 정글 속에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는 아까 갔던 곳 같고. 20KG가 넘는 캐리어를 끌고 또 다른 공항 직원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분명 어른들 어깨너머로 훔쳐본 입국 절차는 너무 쉬웠는데.
때론 인간에게 주어진 상상력이 축복의 산물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뇌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단 몇 초만에 생생히 그려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이대로 비행기를 놓쳐 독일로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내일 아침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다시 한국으로 이송되면 어떡하지?
그 가상의 상황이 너무 공포스러워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가 원한 건 단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것 뿐이었다. 그래서 독일행을 선택한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억울했다. 너무 서러워 23살 어른이었던 나는 마치 3살 어린애마냥 꺼이꺼이 울었다. 누가 들을까 창피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솔직히 말하면 일부러 더 크게 소리 내서 울었다. 멀리서 누군가 듣고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어봐주길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토해내듯 실컷 울고 나니 울음이 잦아들고, 신기하리만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래, 이렇게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 딱 한 번만 다시 일어나서 찾아보자' 하고 눈물을 마저 닦고 일어났다.
두려움에 온 신경이 마비되었을 땐 바로 옆을 지나가도 보이지 않던 전광판이 보였다. 나의 비행기 편명 옆엔 게이트웨이가 적혀있지 않았다. 그때 불현듯 깨달았다. '아, 아직 게이트웨이가 정해지지 않아서 적혀있지 않았던 거구나' 다행이다. 국제 미아 신세는 면했구나.
안녕, 베이징. 나는 독일로 꼭 가야겠어
* 이 글은 다음 편인 '독일인 할아버지가 내게 열 손가락을 보여준 이유' 글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