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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황무지 같을지라도(2020년 4월에 쓴 글)

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인 사람이 있었다.

차라리 그런 문제라면 좀 나았을 것이다.

나는 최근 6주째 주말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구는 지금

중세 흑사병 이후 최대의 전염병으로 전 지구적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글로벌한 지구가 실감 나는 요즘,

내가 하는 일, 학원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다.

나는 경기도 신도시에서 조그만, 하지만 아주 작지는 않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작은 학원이 숨을 곳이 없다는 거다.

언제부턴가 세상에 환멸을 느낀 은둔자처럼 세상의 이슈들을 멀리하고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의 단 하나의 채널도 구독하지 않고(블로그는 하지만) 일에만 파묻혀 지내는 내가 하루하루 촉각을 곤두세우고 시간마다 뉴스를 보고 있을 지경이니 이 사태에 제3자는 없나보다.


처음엔

자영업자들, 소상공인들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사태가 길어지며 이제 대기업도 안심할 수 없게 됐고 상황은 한 치 앞을 모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집에 머물러 달라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밖을 보라, 밖을 보라고! 온 세상이 생명력으로 넘치는 봄이란 말이다.

봄은

시끄럽고 웅성이며 감출 수 없는 생명력을 토해내고 사람들은 자석처럼 그 생명력에 이끌린다. 아이들은 뛰쳐나가려 하고 걷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까닭 없이 힘이 솟구쳐서 무쇠라도 씹어먹을 만큼의 의욕이 넘치는데 어디를 가지도 말고 수업도 하지 말며 집에만 있으라니, 휴원기간 동안 수입이 0인 것은 다른 모든 자영업자들의 현실이니 어쩔 수는 없다고 해도 진짜 힘든 것은 마음이 짓눌리는 이 우울감일 것이다.


일하고 싶다.

출퇴근 길에 봄을 느끼고 싶다. 꽃들을 보며 웃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봄이 되면 차오르는 생명력으로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기가 버거워 유난히 드세고 말도 안 듣고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아이들, 그 아이들과 전쟁 같은 실랑이를 벌이며 목청껏 소리 높여 수업하고 싶다.


6주 동안의 고민에서

네 번은 정부의 방침대로 휴원 했고

한 번은 정부의 지침을 지키며 수업했으며,

지난 주말 또 고민에 빠졌다. 여느냐 마느냐.

결국 마느냐를 선택했다.

그 어떤 결정도 내게는 쉽지 않고 무겁다.


이제

봄의 절정이 시작되는 4월,

엘리엇의 시처럼 가장 잔인한 달 4월이지만

비록 올 해의 봄이 황무지 같을지라도 단 하나의 빗방울에도 대기를 가득 채운 그 생명력은 더욱 더 폭발하여 사방 어디를 가도 숨을 수 없이 그 땅을 초록으로 가득 뒤덮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될 것을 안다.

그리고 원래 황무지는 그런 곳이다.


이번 주말이면 나는 또다시 여는 마느냐의 일곱 번째 고민을 하겠지만 이 황무지의 끝에서 만개할 봄을 생각하며 그 무거운 결정의 시간을 견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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