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 (2) 나는 이제 안전하다.
남편과 주말부부가 된 것도 모자라서 두 아이를 독립시켜야 하고 혼자가 될 처지가 됐다.
혼자 지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두려움의 근본이 알고 싶었다.
마치 오래 미뤄둔 건강검진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겨우 겨우 하듯이
오래된 나의 공포와 대면하고자 했다.
그 여정은 생각한 것보다는 좀 더 수월했다.
아직 풀지 못한 채 먼지가 쌓여가는 상자를 푸는 것과 같았다.
그 상자는 집안 어느 구석진 방에 방치돼 있었다.
나는 그 방까지 가야 했다.
마루는 삐꺽이고 전등은 깨져서 캄캄했다.
걷다가 주저앉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조금씩 가까이 갔다.
문 앞에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녹이 슨 손잡이는 그래도 딸깍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 안, 유리창의 깨진 조각들이 뒹굴고 바닥엔 정체 모를 웅덩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래된 먼지들의 냄새와 급히 천장으로 도망치는 거미 한 마리, 낡은 책상과 박스들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마음 한편이 턱 하고 내려앉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엘 왜 이제야 왔는지
10살도 전에 닫아버린 이곳에 60이 다 돼야 찾아오다니
알 수 없는 울음이 자꾸 솟아올랐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방안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상상으로 만들어져 켜켜이 쌓여있던 것들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전에는 덩어리였던 어떤 것은 선명해져서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군가 침대 발치에서 나를 볼 것 같은 두려움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잠을 청하던 그 많은 밤들,
그 밤들은 유년시절이 아닌 어른이 돼서도 계속 됐었다.
분명 여자이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그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만들었던 종이 인형들도 수북하게 바닥에 쌓여 있었다.
어릴 적 혼자 빈방에 남겨졌을 때 종이인형들을 그렸다. 인형들의 옷도 그렸다. 종이인형들을 오려서 옷을 입히고 인형 친구도 만들어주고 그렇게 혼자 놀았다.
그 인형들이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내 잠자리 발치를 물끄러미 보던 여자도 거기에 있었다. 그 여자는 머리를 감을 때도 내 뒤에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느라 머리 감기도 힘들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그녀는 내 뒤를 쫓아다녔고 청소기를 밀 때도 구석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처음으로 그 방에서 여자의 얼굴을 봤다.
분명 커다랗고 기다란 여자였는데 눈으로 확인한 그 여자는 어린아이였다.
그냥 작고 까맣고 물끄러미 나를 보는 여자 아이였다.
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털썩 주저앉아서 울었다.
왜 이제야 여기를 온 건지
왜 이제야...
두려움의 원인을 찾아 나선 길 끝에서 만난 것은 여자아이의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혼자 남겨졌던 여자아이, 방치된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여자아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심지어 학교에도 속할 수 없었던 여자아이.
하지만 순한 아이는 아니어서 학교의 규율에는 순응하지 못했던 여자아이.
외롭다는 말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더 편했던 아이,
그렇게 무서움은 커질 대로 커져서 괴물 같은 공포가 됐다.
몇 번의 솟구치는 눈물과 함께 나의 공포의 정체를 알게 됐다.
이제 나는 더없이 안전하다는 것을 안다. 더이상 불안하지 않다.
외로움은 만성이 돼서 쉽사리 해결되지는 않는 것이지만 정체를 알게 됐다.
정체를 드러낸 것들은 이미 두렵지 않은 순한 것들로 변한다.
그것이 비록 사자라고 할지라도 잘 다루면 된다.
하루아침에 그 사자를 다루기는 힘들겠지만 조금씩 방법을 터득하게 되겠지.
물론 둘째가 독립을 포기하고 집에 남겠다고 한다면 그게 더 기쁠 일이다.
나이 60에 혼자가 되게 생겼다,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다시 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