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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에 혼자가 되게 생겼다(마지막)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오즈의 마법사의 사자는 겁쟁이다.


커다란 몸에 굵고 날카로운 발톱, 그 어떤 초식동물 하나쯤은 단박에 부숴버릴 것 같은 이빨, 

무서운 으르렁 소리,

이것이 사자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자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풀숲의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사자는 자신이 너무 겁쟁이고 용맹하지 못한 것이 고민이었다.

사자는 "용기"를 얻기 위해 도로시 일행에 합류해서 마법사를 찾아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세상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유명한 구절은

초기 불교 경전의 1장의 내용이다.


늘 소리에 놀라는 나는 저 말을 많이 읊조렸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물론 이 말은 타인의 비판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라는 뜻일 거다.


나는 오즈의 마법사의 사자를 생각하며 내가 마치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바들바들 떠는 그 사자와 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소리에 놀라지 않을지 많이 생각했다.

천둥번개 소리에 놀란 그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도록 나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공포를 대면했을 때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사자를 길들이는 여자


요즘 유행하는 타로 카드를 본 적이 있다.

그중에 사자를 길들이고 있는 여자의 카드가 흥미로웠다.  

타로를 알지 못해서 그 카드의 의미를 알지는 못한다.


여자가 있고 그 여자는 용맹해 보이는 사자의 머리를 잡고 갈기를 쓰다듬고 있다.

입을 벌린 사자는 매우 강하고 멋있다. 동시에 여자 손 안에서 순종적이고 편안하고 안전해 보인다.

그 여자의 손을 벗어나면 사자는 이리저리 날뛰고 포효할 것이다.

하지만 사자는 뭔가 까닭 모를 공포감에 조그만 소리에도 껑충 뛰며 놀랄 것 같았다.

여자는 사자를 길들이고 사자는 여자의 손 안에서 평화롭고 용감하다.

자신의 두려움은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고 고삐 풀린 용맹함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어제 해 질 녘 산책을 했다.

태풍이 오기 전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높고 맑았다.

태풍을 예고하는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으나 그 구름 덕분에 하늘이 더욱더 청명했다.


무념무상으로 걷고 있다가 정발산 둘레길 숲 덤불에서 푸드덕 소리를 들었다.

나는 예외 없이 언제나처럼 깜짝 놀랐다.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중얼거렸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거짓말처럼 싱거운 마음이 들었다.












요 며칠 나 자신의 두려움에 대한 글을 썼다.

두려움과 대면하기 위해 어주 어린 시절까지 갔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밖엔 바람 불고 비가 오고 있다.

어제부터 한반도를 그대로 관통할지도 모를 태풍의 소식이 있어

모두 긴장하고 있다.


태풍소식이 있을 때마다 제발 천둥번개 없이 태풍이 지나가기를 온마음으로 빌었었다.

지금 이 순간 천둥도 번개도 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진다.

천둥번개 치며 비가 왔다면 아마도 손끝이 차가워지며 벌벌 떨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옛날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언젠가는 싱거운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60살까지 천둥번개가 무서웠지 뭐야. 하하하하하하

이러면서 웃을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오늘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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