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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유의 조용한 조력자(2)

측은지심이라고 부를까? 사랑이라고 부를까?

  겨우 잡고 있는 동아줄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고 나는 또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럴 때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다시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 진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다 포기하고 살던 대로 살고 싶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제제는 아빠가 망가트린 풍선을 잡고 운다.

다시 만들면 된다는 누나의 말에 이렇게 소리친다.

"소용없어.

내가 처음으로 만든 풍선이었어.

첫 번째 풍선만이 가장 아름다워. 첫 풍선이 소용없게 되면, 더 이상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이렇게 비참하고 슬픈 소설이 있다니,

나는 너무 슬퍼서 두 번 다시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지난한 외로움과 마주하며 나를 달래고 위로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가며 치유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불쑥 컵 속의 흙탕물처럼 컵이 흔들리며 뿌연 흙들이 솟아올랐다.

불시에 물은 흐려지고 마음은 엉망이 되고 나의 고질병이 도졌다.

버려진 심정으로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전화기가 또 울리고 남편이 세 번째 전화를 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받지 않았다.

그냥 망해버리자는 심정이었다.


새벽 2시가 되도록 엎드려 있었다.

술에 조금 취한 상태라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고

혼자 난리 치던 심정도 좀 잦아들었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카페를 나섰다.












  와이프가 저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종종 느닷없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락없이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 같은 심정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을 먹이고 아이들을 키우고 아내와는 평화롭게 늙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다.

싸우는 것은 어쩐지 나와 맞지 않아서 아내가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오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곤 했다.

난 그냥 평범한 가정이면 족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가정이 이 여자와는 안될 것 같았다.

매번 부딪히는 이 불화산 같은 분노를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30년 넘게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이유는

어딘지 모르게 아내가 불쌍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고

자다가 쥐가 난다며 울면서 매달렸다.

비가 쏟아지며 천둥이라도 칠라치면 다급하게 귀를 막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잘 지내다가도 해 질 녘이 되면 불안해하면서 화를 냈다.

평소에는 논리가 똑똑 떨어지는 아내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화를 냈다.

어떤 때는 며칠이 지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서 화를 풀었다.


아내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유년의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아내를 알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악몽에 시달리며 천둥번개를 무서워하고

해 질 녘을 끔찍하게 싫어하는지 알게 됐다.


어린 시절 아내는 늘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렸다.

동생과 손을 잡고 골목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엄마는 어지간해서는 오지 않았다.

해가 다 지고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던 10살 어린 여자아이를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너무도 불쌍한 나의 아내, 아내의 유년은 아직도 해 질 녘 그 골목에서 동생과 함께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불쌍해서 아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줘야겠다고 그 말을 들을 때 생각했었다.


글쎄, 이것이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아내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측은지심은 사랑일까?

분명한 것은 이 측은지심은 동정이라는 말과는 다른 감정이다.

지금 내 앞에 당당한 아내의 깊은 마음속에 아직도 골목에서 두려움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고 생각할 때 드는 감정이다. 동정은 아니다. 동정이라기보다는 그래 오히려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론 아내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화를 내도 그 속의 어린아이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도 어제 같은 일이 벌어지면 나도 화가 났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조금씩 말타툼을 하다가 건널목에서 아내가 뒤돌아 뛰어가 버렸다.

어이가 없어 서 있다가 곧 뒤따라 갔지만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뒤였다.

욕인지 절망인지 모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내는 가끔 이런 짓을 한다.

싸우려면 집에라도 들어가서 싸울 일이지.


술은 취했고 밤 12시가 넘은 길바닥에서 저렇게 뛰쳐 사라지면 진짜 대책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당연히 받지 않는다.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한편 또 측은지심이 들었다.


나는 이 오래된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아내의 저 이상한 행동의 근원을 끝까지 대면하자고 작정했다.

처음으로 아내의 문제가 내 문제로 느껴졌다.

어쩐지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선은 그녀를 찾아야겠다는 심정으로 그녀가 뛰어간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밤거리를 찾아 헤맸다. 불이 켜져 있는 술집에 모두 들어가 봤다.

어디에도 아내는 없었다.

새벽 2시가 돼 가고 있었다. 피곤하고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생각한 순간 나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


길 건널목에 아내가 서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다이어트를 해서 몸집이 작아진 아내는 아주 어린애처럼 보였다.

아니면 원근감이 느껴져서일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아이가 건널목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저렇게 작았던가?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아내가 건너올 때까지 기다렸다.

막 뛰어오는 아내는 반쯤 웃고 반쯤 울고 있었다.

아내가 울 지 않았다면 어쩌면 내가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늘 같은 밤이 지났고

똑같이 어제가 지났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엔 새로운 해가 떴다.












  한차례 난장이 지나고

나는 남편을 만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1층 편의점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서 있었다.

나를 찾느라 2시간 동안 밤길을 찾아 헤맨 남편이 고맙고 측은했다.

예전에 도망치는 나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던 아빠생각이 났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심정이 들 지 않았다.

그리고 어쩐지 이런 고질병이 좀 싱거워졌다.

다시 고질병이 도지는 날이 또 있겠지만 눈 질끈 감고 그 순간을 넘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젯밤 남편은 내게 굳 윌 헌팅의 로빈 윌리암스처럼 느껴졌다.


한순간에 툭하고 과거의 감정들이 끊어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더 이상 느닷없는 고질병으로 부끄러운 감정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고질병이 도지고 그것 때문에 또 부끄러워서 도망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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