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아는 만큼 들리는가?
영어학습 관련해서 세상에 무수한 담론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영어 소리를 들을 때 아는 만큼 들린다는 것인데, 영어 소리를 아무리 들어봤자 아는 소리만 들리고 모르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정말 맞는 말인 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영어 습득 관련해서 어떤 테제가 맞는 건 지 아닌지를 생각할 때는 다시 모국어를 습득할 때의 과정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습득할 때 모국어 노출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이 말은 절대적으로 틀린 말이다. 왜냐면 모국어 소리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보면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들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선험적 지식을 갖고 태어나야 가능한데 그게 말이 되는가? 아이들은 태어나서 무차별적인 모국어 소리에 노출된다. 아이들은 모국어에 대한 그 어떤 지식을 갖고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태어나면서 바로 아이들의 귀로 엄청난 소리들이 쏟아져 들어갈 뿐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행동과 함께 내뱉는 말들, 어떤 상황 속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반복해서 듣고 경험하며 그 소리를 이해하게 된다. 아는 만큼 들리는 게 아니라 보고 들은 만큼 알아가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런 말이 생겼고 그 말이 맞다고 확신하는가? 그것은 듣기를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의 듣기와 아이의 듣기는 다르다
어른의 영화 보기와 아이의 영화보기를 비교해 보면 이 사실은 더욱더 명백해진다. "챨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를 7세 아이와 그의 엄마가 같이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운 엄마다. 상당수의 단어를 외웠고 문법도 좀 하고 한글 해석도 하는데 소리 노출엔 경험이 별로 없는 전형적인 과거 영어교육을 받은 엄마라고 가정해본다. 둘이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아이는 영어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냥 듣고 본다. 화면 속에 빠져들어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엄마의 뇌는 미친 듯이 돌아간다. 자막도 없이 영화를 보자니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영화의 내용은 주인공인 윌리 웡카가 다섯 개의 골든티켓을 초콜릿바 안에 감췄고 그 골든 티켓을 찾는 5명의 아이를 초콜릿 공장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인 것 같다. 골든 티켓을 처음 찾아낸 아이는 독일의 어느 푸줏간 집 아들이고 등등... 열심히 생각하고 스토리라인을 찾아간다. 그러다가 예전에 배웠던 단어가 딱 들리는 순간 아, 뭔가 들리는 것 같다. 이소리를 아이도 들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본다. 하지만 보다 보니 윌리 웡카의 저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답답하다. 스토리를 모르겠다. 이러는 사이 어느덧 영화는 끝이 난다. 어찌어찌 스토리가 연결된 것도 같다. 반면에 아이는 어떨까? 아이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봤을 뿐이다. 엄마는, 영어를 배운 나도 이 정도밖에 이해를 못했는데 아이는 더하겠지 싶어서 이렇게 내용도 모른 채 영화를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에 빠진다. 이제 영화가 끝났고 두 사람 각자의 머릿속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자. 엄마의 머릿속에는 우리말로 된 스토리만 남아있다. 그것도 자신이 꿰어 맞춘 이야기들이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연결할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소리가 떠돌게 된다. 이렇게 영화 한 두 편을 보는 것은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지난다고 생각해보자. 엄마는 여전히 영화를 보면서 한국말 스토리를 찾을 거고 아이의 머리에는 소리가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얘기는 애당초 "안다"라는말의 출발부터 잘못된 말이다. 영어의 시작을 소리 채우기로 시작한다는 것은 그 소리 그 자체를 채운다는 것이지 의미를 알자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의미를 생각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 너는 뭘 알아들으며 영화를 보는 거니?" 라던가 "의미를 모르는 말들은 소음에 불과하다"라는 말들은 물음의 시작이 잘못된 말인 것이다. 그 말은 이제 영어 소리를 채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고 영어공부 10년 이상 했는 데도 듣지도 말도 못 하는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갓 태어난 아이들에게 들려오는 모국어를 아이는 의미를 생각하며 듣는가? 전혀 아니다. 소리가 차곡차곡 쌓이고 나중에 의미로 전환된다. 소리를 듣자마자, 영화를 보자마자 의미를 찾고 내용이 뭔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우리 어른일 뿐이다. 그러니 자막을 켜고 봐야 하고 스크립트를 뽑아서 한줄한줄 해석하고 외워야 영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다음 상황과 같다. 엄마랑 미국으로 간 한국 아이가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학교에 뚝 떨어진 상황말이다. 누구도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또래 아이들의 말이나 선생님의 말을 한국어로 해석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일 년 정도 지나면 아이는 또래 말을 이해하고 선생님 말도 이해하며 그럭저럭 학교를 다니게 된다. 영어의 시작을 듣기로 시작하고 듣기의 시작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처음 한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은 소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하루에 세 시간씩 삼 년 동안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보면 과연 그때도 영어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인 지 그 대답을 듣고 싶다.
you complete me. 너는 나의 반쪽이야
"자막 없이 보는 영화, 과연 효과 있을까?"
자막에 관한 논쟁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내용을 모르니까 한글자막을 열고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 역시 어른들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생각해보면 그 자막이라는 것도 그것을 번역한 사람의 주관적인 자의가 아닌가? 문화가 다른 외국영화가 정서적으로 잘 다가오기 위해서 번역가들은 얼마나 많은 의역을 하는가? 요즘은 또 얼마나 재밌게 번역들을 하는지 모른다. 톰 크루즈와 르네 젤위거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가 있다. 전에도 본 적이 있던 이 영화를 어느 날 케이블 티브이에서 방영하길래 또 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톰이 르네에게 you complete me!!라고 말하는 유명한 장면이 있는데 순간 자막에는 너는 나의 반쪽이야 라는 자막이 떴다. 물론 의역이다. 어른들이 보면 의역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기엔 어땠을까 생각해보자. 뭔가 좀 넘어가기 힘들다. 그렇다면 또 아이들을 위해서 글자 하나하나 직역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 번역이 될 것인가? 이런 번역은 어느 영화를 보던 발견 된다. 자막의 문제는 그뿐만은 아니다. 자막을 켜고 영화를 볼 때는 자막을 읽느라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왜냐면 귀보다 눈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한글 자막을 보는 순간 영어 소리는 무심결에 지나가버리고 만다. 결국 자막을 켜놓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 위함이 돼 버리고 아무리 소리를 채우려고 해도 자막으로 보았던 한글 문장이 아이들의 머리에 잔상처럼 먼저 떠오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럴 거면 뭣하러 영화를 보고 뭣하러 소리를 채우는가? 자막을 여니 마니 하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입장에서 하는 고민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아이들이 영화를 보는 것은 의미를 잡기 위함이 아니고 소리를 채우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나의 반쪽으로 해석하던 나를 완벽하게 하는으로 해석하던 그것은 해석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고 아이들은 해석을 보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미 굳어진 뇌와 수없이 학습한 영어를 가지고 영화를 볼 수밖에 없지만 아이들은 아무런 정보 없이, 태어나서 모국어 소리에 무차별 적으로 노출되듯이 그런 상태로 영어 소리에 노출돼야 한다. 일정 정도 시간을 무차별 적으로 채우고 나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의미 잡기다. 뜻도 모르고 영화를 보고 있냐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 뜻을 몰라야 진정 소리가 들어온다고, 우리가 영어의 뜻을 우리말로 알자고 해석만 해왔기 때문에 듣지도 말도 못 하는 영어를 갖게 됐다고 말이다. 듣고 말하는 영어를 위해서는, 즉 내가 갖지 못한 새로운 결과를 갖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하고 전혀 새로운 방법을 써야 한다. 나와는 다른 영어를 갖기를 원한다면 내가 했던 방법은 버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영어의 의미 잡기, 그것은 소리를 채우고 나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모국어의 소리가 채워지면서 아이가 옹알이를 하듯이 영어의 소리가 채워지면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한다. 그러면서 의미 잡기, 즉 알지도 못하고 들었던 소리들의 의미가 명확해지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단계로 접어든다. 터널처럼 길고 긴 시간들 저 끝에서 그토록 바라던 듣고 말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비상구의 등처럼 깜빡인다. 가슴 벅찬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