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레벨 6점, 듣고 말하기 앞에서는 무용지물
듣고 말하기가 안 되는 이생망인 나의 영어는 신기하게도 리딩 레벨은 거의 6점에 가깝게 나온다. 한창 열심히 원서를 읽을 때 테스트를 해 본 결과라 지금은 좀 떨어졌을 수는 있지만 5점대는 나오리라 생각한다. 리딩 레벨 5점, 6점이라 함은 보통 미국 학년을 기준으로 하는데 미국 학교 기준으로 5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리딩 레벨이고 한국식으로 하면 고등학교나 수능 지문 레벨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 아이의 리딩 레벨이 5점대에서 꼼짝 안 한다고 한숨을 쉬는 학부모를 만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리딩 레벨 5점이 한숨을 쉴 정도로 많이 부족한 레벨일까? 전혀 아니다. 리딩 레벨로만 치면 부족한 레벨은 아니다. 미국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하니 어딘가 좀 쉬워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다. 아래 사진은 미국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의 한 페이지다. 결코 쉽지 않다. 우리나라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를 외국인이 본다고 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보면 감이 좀 잡힐 것이다.
다시 이생망인 내 영어로 돌아와서 나는 리딩 레벨 6점대의 책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는데 들리지도 않고 말하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물론 오래전에 영어를 배운 예전 세대의 극단적인 예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서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아니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리딩 레벨 테스트에서 리딩 레벨 5점 정도를 받았다면 리딩 수준은 상당하다고 생각해도 된다. 게다가 원어민과의 30분 이상 의사소통도 원활하다면 아이의 영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니 안심해도 된다. 그러나 아이가 듣기나 말하기가 잘 안 되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이런 경우라면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가령 , "그래 우리 아이는 원어민의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하고 그들과 대화는 좀 안되지만 영어책 읽는 수준이 상당히 높으니 그거면 됐어",라고 만족해할 것인지 말이다. 책을 잘 읽고 독해 실력도 상당하니 언젠가는 말문이 트여서 말도 잘하게 될 거야 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면 그 기대는 좀 넣어둬야 할 수도 있다. 왜냐면 대화의 시작은 듣기, 즉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고 이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42살에 참여했던 전국 주부 영어 말하기 대회의 추억
나는 42살 되던 해에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주부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밝히기 애매하고 이상한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어찌어찌 참가하게 된 대회였는데 상당히 많은 참가자들을 지역별 예선과 본선을 통과시켜 서울로 집결하여 우승을 가리는 방식의 대회였다. 물론 참가자들이 순수 주부들이라 엄청나게 수준 높은 대회는 아니었고 나는 서울 본선에 진출해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 과정은 이랬다. 우선 하고픈 말을 한글로 작문하고 그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원고를 만들었다. 입에 붙도록 여러 번 읽고 외우고 거기에 제스처를 입혀서 완전히 내 것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했다. 앞에 청중이 있다고 상상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처음엔 대충 참가의 의미를 두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바꾸고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본선대회까지 갔는데 본선 무대는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무대였다. 조명이 사방에서 비추고 행사를 주관한 그 단체에서 자체 티브이 송출을 하고 있어서 사방에 티브이 모니터가 있었다. 나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딱 굳어버렸다. 몹시 당황한 상태로 허겁지겁 내 차례를 끝냈고 장려상을 받아 겨우 체면치레는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대회를 통해서 내가 영어 관련 얻은 점은 무엇일까? 없었다. 단연코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인 친구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원고를 작성했고 그것을 그대로 외워서 발표를 했을 뿐이다. 나는 대중들 앞에서 5분간 영어로 발표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영어 관련 경험이 아니라 나 자신의 알을 깨는 경험이 됐다. 떨리고 부끄럽고 어색함 등을 벗어던지는 경험이었다. 영어와는, 특히나 스피킹과는 더더욱 아무 상관이 없었던 영어 말하기 대회, 물론 좋은 경험이기는 했다.
말하기의 시작은 듣기
말하기는 책을 읽고 리텔링을 하거나 대중들 앞에서 쓰인 원고를 발표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거와는 상관이 없다. 그건 그냥 내 생각을 외치는 것일 뿐이다. 말하기란 상대가 있어야 한다. 내게 말을 하는 상대, 내 말을 들어주는 상대가 있어서 그의 말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고 같이 공감하고 의견을 묻고 하는 대화이다. 결코 일방적인 떠들어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의 시작은 듣기이다. 우선은 상대의 말을 알아는 들어야 예스를 하던 노우를 하던 할 수 있지 않은가?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을 하고 내 얘기를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혼자 떠들거나 발표를 하는 스피킹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말하기, 즉 대화이다. 그래서 결국 말하기의 시작은 듣기다. 이 정도면 영어의 시작, 듣기가 전부다 라고 말 못 할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