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영어의 시대를 여는
새로운 사람들의 등장(3)

저 여자는 영어에 미쳤어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삐져나오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특별한 사람은 어찌 됐던 티가 난다는 뜻인데 딸의 경우 이 말이 합당한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딸의 영어가 동네에 조금씩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얌전하고 내성적인 아이라 무슨 계기로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딸은 생일이 빨라서 7세에 입학을 했는데 입학시기쯤엔 챕터북 정도는 읽는 상태였다. 어느 날 몇 명의 엄마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동네에서 오가며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헤어지면 그뿐인 그 정도 사이의 엄마들이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외향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거의 집에만 붙어있는 집순이로 바뀌었는데 딸이랑 영어를 하면서는 기타의 다른 일들은 거의 잊고 살았다. 달리 내 관심과 열정을 끄는 일들이 없었다. 살림하고 아이랑 영어하고 이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그렇게 살고 있던 나의 집을 방문한 외부사람들이 너무 반가왔는지 나는 그날 그 방문객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말았다. 당시 우리 집의 풍경이란 것은 거실 한쪽과 식탁 쪽 벽면을 채운 영어책, 엄청난 양의 비디오 녹화 테이프들, 바닥에 쌓여있는 오디오 테이프들 등등, 사방이 영어로 둘러싸여 있었다. 방문객들은 쓰윽 집안을 스캔하더니 이 집엔 왜 이렇게 영어책이 많냐며 입을 뗐다. 아, 참았어야 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방언 터지듯이 영어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영어는 듣기부터 해야 된다고, 듣기만 해도 영어를 읽을 수 있다고, 그리고 읽기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있다고 막혔던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거의 정신줄을 놓고 떠들어 댔고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이미 방문객들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미친 듯이 떠드는 내 얼굴을 보다가 돌아간 후였다. 그동안 혼자 섬처럼 떨어져서 아이랑 영어만 하다 보니 너무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엎지런진 물이라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고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온 소문은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저 여자는 영어에 미친 여자이다, 하루에 세 시간을 아이를 잡고 영어를 시킨다. 매일매일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히고 들들 볶는다. 집안에 영어책이 서점만큼 쌓였더라. 등등.. 나는 그 말을 전해 듣고는 황당했고 어이가 없었다. 하루에 세 시간을 아이에게 영어를 시키는 것은 맞다. 하지만 3시간씩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단어를 외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딸은 그림을 그리며 너무 즐겁게 영화를 봤다.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라이언 킹, 뮬란을 볼 때는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도 췄다. 물론 책을 듣고 읽었지만 그것은 거의 자발적인 형태이고 습관이었다. 30분 집중 듣기를 하고 30분을 책을 읽고 2시간 정도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이의 영어의 전부였다. 그들이 비난했던 하루에 3시간씩 아이를 잡는다는 것의 실체가 그런 거였다는 것을 알았을까? 아니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도 비난이 돌아온 걸 보면 내 말을 듣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억울했다. 진짜 아이를 잡는 것이 누구인지 밝혀보고 싶었다. 영어학원을 다니며 단어 외우기와 숙제에 지치는 아이들이 어느 집 아이들인지 누가 더 괴로울지 아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싶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삼 년이라는 말이 그들에게 그렇게나 거부감을 주는 말이었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은 엄마표 영어라는 말이 흔하지만 21년 전의 그때는 엄마표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더욱이 하루에 세 시간씩 삼 년을 문법공부도 안 하고 단어도 외우지 않고 영어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게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한바탕 소란스럽던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해보니, 그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영어에 미친 여자였다. 말하지 못하는 나의 영어에 한이 맺혀 그것을 딸에게 풀려고 했다. 딸만은 그런 영어를 갖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영어에 미친것이라면 맞다. 나는 영어에 미친 여자다. 그랬다. 그때부터 영어에 미쳤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영어에 미친 여자다.




새로운 사람들과 접속되다.


오프라인에서 미친 여자쯤 됐던 나는 이제는 누굴 만나도 영어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영어는 다들 학원에 다니는 게 당연해서 너의 아이는 어느 학원을 다니냐고 물으면 얼버무리거나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고 대답했다. 내 속에서는 영어학원은 다닐 필요도 없어,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 나는 하루에 세 시간씩 영어 때문에 애를 잡는 미친 여자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서 그냥 참았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집은 영화가 돌아가고 영어책소리가 들리는 생활이 계속됐고 밤에는 느려 터진 인터넷으로 영어책을 검색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랑 비슷한 여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접속됐다. 놀랍게도 나처럼 영어에 미친 한 무리의 여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사막길을 걷다가 비슷하게 표류하는 동지를 만난 기분은 이런 것이었을까? 내가 가는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을 보며 확신했고 위로도 받았다. 그날 이후 그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원 없이 영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코엑스에서 소모임을 갖기도 했다. 작은 세미나룸에서도 모였고 대강당처럼 조금 큰 곳에서도 모였다. 모이면 간증 같은 경험담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현실에서는 풀지 못했던 얘기들을 실컷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비밀 결사모임 같은 완전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 커뮤니티가 바로 훗날 "잠수네커가는 아이들"이 됐다. 잠수네 영어, 혹은 엄마표 영어라는 말들이 생겨나고 우리는 그 말의 시작을 연 사람들이 됐다. 말 못 하는 영어, 깜지로 대변되는 영어, 시험을 위한 영어 등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 영어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새로운 사람들, 우리들.

끝도 없이 열정이 넘쳤던 그때, 참으로 행복하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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