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는 이생망
영어를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년도를 딱 얘기하라면 1979년이다.
그때는 영한사전이 필수 준비물이었다. 수업시간에 a, b, c와 발음기호를 배웠다. 발음기호를 배우고 발음에 따라 영어를 읽었다. 다음은 모두가 아는 그대로이다. be동사를 시작으로 문법을 배우고 노트 가득 깜지를 썼다. 영어는 단어와 문법 아니냐며 명사 하나도 아주 디테일하게 나눠서 배우고 외웠다. 처음 영어를 배우며 외우기 시작한 단어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기는커녕 그 양이 점 점 더 늘어났다. 물론 배우는 책의 수준이 높아가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2년 교양영어까지 그렇게 외우고 시험 치고 했으면 영어의 산 하나는 넘어야 마땅했을 텐데 산을 넘기는커녕 영어는 언제나 저만큼 더 멀리 가버렸다. 더 충격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일어났다. 우연하게 캐네디언과 같이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제법 영어책을 읽었기 때문에 영어 좀 한다 생각하고 호기롭게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뭐라 뭐라 말을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는 그녀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에 못 들은 척 그녀의 얼굴에 내 귀를 가까이 대며 다시 한번 말해달라는 제스처를 했으나 그녀의 목소리를 못 들은 건 아니었다. 화장실이 급한 것처럼 익스큐즈 미! 한마디 하고 잠시 그 자리를 피했었다. 물론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지만 그 후에 벌어진 일은 말을 하지 말기로 하자. 뭐 이렇게 저렇게 가까스로 몇 마디 대화는 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원어민의 그 언어들, 내가 책에서 읽은 그 단어와 분명 똑같았을 것인데 전혀 생경했던 그 소리들, 그날의 당혹감과 낭패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게는 충격이었다.
내가 그날 당혹감을 느꼈거나 말았거나, 그것은 살면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배웠던 영어가 등장할 일이 없었던 것인데 이럴 거면 뭐하러 영어를 8년이나 배웠나 싶지만, 나는 영어와는 아무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잘 살았고 결혼을 했다. 영어가 다시 문제로 떠오른 것은 딸을 낳고 나서였다.
딸의 영어는 달라야 했다
" 얘가 벌써 글자를 아네"
딸이 첫 돌이 지난 어느 날 우리 집에 잠시 다니러 왔던 친정엄마가 내게 말했다. 어쩌나 보려고 책을 거꾸로 주면 받아서 자꾸만 똑바로 돌려 든다고 신기하고 대견하다며 말했다. 열 번을 거꾸로 주면 열 번 모두 책을 돌려서 본다며 이제 막 첫돌 지난 애가 글자를 안다고 신통방통하다고 하셨다. 딸은 아마도 글자보다는 그림을 보고 책을 돌렸을 텐데 엄마는 손녀딸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렇게 말하셨을 것이다. 실제로 딸은 글을 아주 빨리 읽었다. 딸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책을 읽어주었다. 물론 한글책이었다. 글 없는 그림책을 시작으로 한 줄짜리 글밥의 책까지 정말 많이 읽어줬다. 딸은 문자가 아주 빠른 아이에 속했던 것 같다. 매일 책을 읽어줬을 뿐인데 만 세 돌 전에 글을 읽었다. 읽는 것뿐만 아니라 연필을 쥘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연필을 잡고 꼬불꼬불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 그런 딸을 보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글이 빠른 아이를 보니 영어도 해주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솟구쳤다. 동네에서 가끔 만나는 또래 아이 엄마랑 우연히 영어 얘기를 하다가 그 엄마에게서 빙뱅붐이라는 비디오테이프를 알게 됐다.
빙뱅붐, 영어 챈트 단어들이 들어 있는 비디오테이프
빙뱅붐은 유아들을 위한 영어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래에 쓴 빙뱅붐은 20여년도 더 전의 비디오테이프를 말한다. 오래전에 접했던 빙뱅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라 오해 없기를 바란다.
빙뱅붐은 20여년 전 엄마들에게 몹시 핫하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비디오테이프였다. 빙뱅붐을 많이 본 아이들은 너무 영상에 많이 노출돼서 책 읽기도 싫어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는 등의 말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 테이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이웃 엄마에게 테이프 하나를 빌려서 딸에게 틀어주었다. 딸은 바로 관심을 보였고 그 테이프 전시리즈를 많이 반복해서 보았다. 물론 책을 싫어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는 부작용은 없었다. 그 테이프는 단어를 외치고 따라 하고 챈트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어서 아주 쉬운 단어를 상당히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트를 가면 딸은 카트에 앉아서 쌓여있는 토마토를 보며 "톰매이로" 하고 외쳐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구성으로 어느 정도 보고 나니 아이가 싫증을 내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빙뱅붐을 보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렇게 단어만 외치는 것이 영어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어느 날 신문에서 동화로 영어를 시작하라는 광고를 봤고 스콜라스틱의 헬로 리더라는 영어동화책 시리즈를 만났다.
딸이 처음 만난 영어동화책, 스콜라스틱의 헬로 리더 시리즈
바로 세트를 주문했다. 책과 함께 수업도 하는 프로그램인데 책만 주문했다. 한 줄 정도의 글밥이 있는 책 12권인가가 배달돼왔다. 테이프를 들으며 책을 보는 거였는데 역시나 챈트가 있어서 즐겁게 따라 하고 노래를 부르도록 구성돼 있었다. 딸은 하루에 30분 이상 동화책을 듣고 따라 하고 노래 불렀다. 아주 즐겁게 했고 몇 번 반복하면 바로 다 외우고 읽었다. 외워서 읽는 건지 글자를 알아서 읽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 짧은 책들을 줄줄줄 읽어도 여전히 내 마음은 갑갑했다. 내가 원하는 영어는 책을 읽는 영어가 아니었다. 책은 나도 읽는다. 데미안, 주홍글씨, 테스 등을 원서로 읽었다. 하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원어민을 만났을 때 한마디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은 더욱더 할 수 없었던 그 당혹감이 떠오르며 저렇게 책을 읽는 게 무슨 소용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딸의 영어는 책은 당연히 읽지만 단순히 읽는 영어가 아닌 말하는 영어, 그것이 돼야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말하기와 읽기는 그 시작이 다르다는 것을. 딸의 영어는 나의 영어와는 다르게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문제를 알았고 답을 얻기 위해 시중에 나와있는 영어 관련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어나갔다.
모르는 방법에 대한 답은 모름지기 책에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 길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난 책, 솔빛엄마의 엄마 영어방송이 들려요!
나는 그 책을 읽고 심장이 터질듯한 흥분감에 유레카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