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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거실 캠핑을 즐기다니...

캠핑 중증병에 걸리다.

by JJ teacher

제주도에 비가 내린다.

동계 캠핑을 위하여 루프탑 텐트를 설치하고 어넥스를 구입하고 등유난로에, 팬히터, 써큘레이터까지 모든 장비를 갖추었지만 겨울에 비까지 내리면 방법이 없다. 혼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이러한 날씨에 캠핑을 하자고 하면 어떤 눈으로 나를 바라볼 지 뻔히 알기에 말도 꺼내지 못했다. 마당에 타프를 치고 불멍이라도 할까 했는데, 바람까지 분다. 이러한 날에 타프를 치려면 비바람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어쩌지....? 저녁식사 후에 맥주까지 한 잔 하니 몸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병에 걸렸다. 캠핑병, 그것도 초기가 아닌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다. 나는 기어이 마당에 있는 창고로 가서 우드롤 테이블과 가스렌턴, 캠핑체어를 꺼내 거실에 세팅을 시작했다.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들킬까봐 도둑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몰래 세팅을 했다.

캬~~!! 이거지, 이거!!

거실 전등을 끄고, 테이블에 이소가스 렌턴까지 켜고 나니 제대로 분위기가 난다. 거실바닥에 캠핑체어를 펴고 앉아 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불멍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등유난로까지 가지고 와 불을 켠다. 이제 불멍타임~~

밤에는 이 가스 렌턴 하나면 끝이다.

"이게 다 뭐야? 이거 언제 다 가지고 들어왔어?"

아내의 기가 차다는 목소리를 외면하며 혼자 감성에 취해 그윽한 눈빛으로 말한다.

"멋지지? 이리 와, 한잔 해~~"

처음에는 마지 못해 옆에 앉았지만 렌턴에, 난로에, 음악까지...... 아내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낀다. 캠핑 테이블만 폈을 뿐인데, 사람의 마음이 참 이상하다. 이렇게 작은 것에 행복감을 느끼다니. 그래서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안 잘 거야? 나 잔다."

아내가 들어가고 혼자 조용히 글을 쓰니 세상에 근심걱정이 없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하다.


제주도에 살면서 거실 캠핑을 하다니....

4년 전, 제주도에 처음 내려와 캠핑을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이 정도로 캠핑에 빠질 줄 몰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팩을 박고 온갖 짐을 챙겨와 세팅을 하고 불편하게 씻고, 잠을 자고. 뭐 한 가지 편한 것이 없는 이토록 소모적인 취미를 가지게 될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만 기다린다. 제주도 하늘이 파랗게 보이고 한라산이 선명하게 모습만 드러내도, 바람이 약하게만 불어도(제주도는 언제나 바람은 분다) 몸이 들썩인다.

추운 겨울에 비가 오고 바람까지 모진 오늘,

비록 제주도의 자연에서 캠핑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나는 거실에서 캠핑중이다.


나는 오늘도 제주도로 퇴근한다.

나는 제주도에 산다.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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