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겨울 바다는 춥다.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애월하귀 해안도로를 달렸다. 가슴에 답답한 일이 있어 갑작스레 바다가 보고 싶었다. 여름과 가을 해안도로를 따라 성행하던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썰렁했다. '임대문의 OOO-OOOO'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건물도 많이 보였다. 관광객이 없는 제주도의 모습은 이렇게 다르다.
제주도에 살며 바다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의 바다는 계절마다 다른 빛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 여름 바다가 에메랄드빛이라면 겨울 바다는 검푸르다. 바람이 불어 웅장한 파도가 칠 때면 '몇 달 전까지 이곳에서 어떻게 물놀이를 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렵다.
해안도로 중간에 자동차를 멈추고 내려본다. 겨울의 찬 바닷바람이 두꺼운 패딩 사이를 파고든다. 몸은 금세 얼어붙지만 확 트인 풍경에 눈이 시원하다. 마음까지 확 뚫리는 기분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제주도 바다에 와 보았다.
익숙해지는 것이 무섭다고 요즘 애써 바다를 잘 찾아가지 않는다.
눈을 돌리면 멀리 보이는 것이 바다이기에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직장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10분이면 파도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바다에 가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몇 달 전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설렘에 가득 차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오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도민이 다 되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제주 바다를 바라본다. 마음이 편안해지며 서서히 차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작은 것에도 인생의 의미를 찾고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토록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제주도,
이곳에 살고 있는 감사함을 다시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