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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May 29. 2023

중학생 아들과 아빠, 단 둘이 캠핑장에 오면 생기는 일

사춘기 아들과 삼춘기 아빠... 단 둘만의 캠핑

  모처럼 찾아온 3일간의 연휴, 아내와 딸이 서울에 다녀온다고 했다. 이 말인 즉 3일 동안 사춘기 아들과 단 둘이 제주도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올해 중학생에 입학한 아들은 외모는 아직 초등학생의 티를 벗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점점 말대답이 늘고 괜한 신경질을 내는 등 그 이름도 무서운 중학생병에 걸려가는 것 같았다. 여기는 제주도! 아들과 단 둘이 지내다가 폭발하면 어디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데, 서서히 걱정이 된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캠핑이었다.

아들과 단 둘만의 캠핑!
캬~! 이름만 들어도 뭔가 싸~나이들의 추억이 생길 것 같이 낭만스럽지 않은가?


  거금을 들여 제주도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신설 캠핑장을 2박 예약했다. 시작은 참 야심찼는데 점점 시간이 다가올 수록 걱정이 되었다.

  '3일을 아들과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괜한 짓 벌인 것 아니야?'

라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취소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막상 집에서 단 둘이 할 일도 따로 없었기에 취소는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애월읍 산자락에 위치한 '올레캠핑장'

  마침내 찾아온 금요일, 5시 퇴근 후 부랴부랴 짐을 챙겨 캠핑장으로 떠났다. 넷이 아닌 둘이 떠나는 캠핑이었기에 짐이 좀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챙겨보니 준 것은 침구류 두 채와 캠핑체어 두 개 밖에 없었다. 2박 동안 편하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루프탑 텐트가 아닌 커다란 리빙쉘 텐트를 치기로 했다. 아들과의 전쟁은 차에서 짐을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날씨도 좋지 않아 비바람까지 세차게 불고 있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차에서 짐 좀 내려."

  "여기 좀 잡아봐. 아빠 혼자 어떻게 다 하니?"

로 시작한 갈등의 대화는 결국

  "야! 그럴 거면 아무 것도 하지말고 그냥 차에 있어."

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사춘기 중딩 중 아빠의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순한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됐어! 나도 안해."

  아들은 차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비는 내리지, 바람은 불지.... 이때 드는 생각!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들과 단 둘만의 첫캠핑을 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차문을 열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아들,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우리 화해하자!(부글부글)"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차에서 내린 아들과 무사히 피칭을 마치고 쉴 수 있었다. 캠핑 첫날부터 이리 삐걱대니 3일간의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 지 막막했다.

캠핑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불멍이지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듯이 텐트 안을 세팅하고 늦은 저녁을 먹고 불멍 타임을 갖자 아들의 태도가 급변했다. 삼겹살 바비큐로 든든히 배를 채워서인지, 좋아하는 닌텐도를 해도 잔소리를 안해서인지 장작불에 마시멜로우를 굽던 아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나중에 커서 이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뭔....갑자기?

  얼떨떨해하는 나에게 아들은 모든 수고와 고달픔을 날려보내는 한 마디를 남겼다.

  "아빠, 감사합니다."

  '그래, 이 자식아! 이제야 알았냐?'

  감격스러운 속마음을 숨기고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나도 고마워, 아들! 같이 와줘서.(오글오글)"

  그렇게 훈훈하게 캠핑 첫날밤이 지나갔다.


  그래서 2박 3일 동안 캠핑이 순조로웠냐고?

  내가 중학생 아들과 단 둘이 캠핑을 하며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 괜히 중학생병이니, 중2병이니 하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들은 다음날 눈을 뜨자 지난밤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심심하다고 짜증,

  놀 사람 없다고 짜증,

  비가 와서 축축하다고 짜증,

  잔소리 한다고 짜증을 냈다.

아들~ 대체 뭐가 불만인 거니?

  이곳까지 와서 유튜브랑 닌텐도만 하는 아들에 나도 심기가 불편했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들~~ 캠핑장에 왔으면 산책도 하고 책도 보고, 아빠랑 얘기도 해야지. 유튜브만 볼 거면 집에 있는 거랑 차이가 없잖니."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나는 2박 3일 동안 고기 구워 주고, 같이 닌텐도 게임도 해주고(난 게임을 정말 안 좋아한다), 이야기도 하고, 불멍도 실컷 하며 최선을 다했다. 캠핑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아들과 텐트를 걷으며 한바탕 하기는 했지만 무사히 캠핑을 마친 것에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자동차 트렁크에 꽉 찬 캠핑장비를 내리고 있는데, 옆집에 사는 여자분이 놀라며 물었다.

  "단 둘이 캠핑 다녀오신 거예요? 형부, 멋져요. 우리 남편은 상상도 못할 일인데."

  나는 최대한 무심한 척 멋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남자들끼리의 캠핑 멋지잖아요."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 친구가 현명한 것이랍니다~~'


  "아들, 아빠랑 캠핑 어땠어?"

  오늘 저녁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며 아들에게 묻자 아들은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정말 좋았어."

  도대체 뭐가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빠와 2박 3일 동안 부딪히면서 뭔가 즐거웠던 것이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시간이 흘러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와 보냈던 3일간의 시간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도 이렇게 흐뭇한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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