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림자로 살아가기

그래! 지금 아주 잘하고 있다.

by JJ teacher

"나는 우리 선생님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 힐링이 된다니까."

지난주 회식 자리에서 선배 교사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아, 내가 지금 참 마음이 평안한 상태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만 해도 사람들이 내게 말도 붙이기 어려워했다. 수업과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인 10분도 교무실로 뛰어와 업무를 할 정도로 바빴고 학교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삶이 피폐했다. 이 피폐함은 내 얼굴과 표정에 모두 묻어나왔다. 올해 나는 직장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활하고 있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 학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학교에 피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업무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윗사람에게 특별히 잘 보이려 하거나 인정 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내려놓았다. 직장과 상사에 충성하는 시간에 가족을 돌보고 나 자신을 수양하는데 시간을 쓰겠다는 것이 현재 내 삶의 방향이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내 원래 모습이 돌아왔다. 원래 잘 웃는 내 표정이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어도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 사람의 곁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매일 불만에 싸인 표정을 짓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과 누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겠는가? 오히려 "저 사람 너무 속편해 보이지 않아? 생각이 없는 것 아니야?"라고 뒷담화를 할 지라도 잘 웃고 편안한 표정으로 사는 사람과 대화하고 가까이 있고 싶어한다. 현대사회처럼 치열한 경쟁의 환경에 살 수록 더욱 그렇다. 자신은 꿈을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어도 내 주위 사람까지 그러면 숨 막혀 한다. 나와는 삶의 방향이 다르지만 상대를 보며 여유를 느끼고 싶어한다. 40대 후반의 나이, 가장 일이 많고 승진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제주와 서울을 왔다갔다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직장 동료에게는 위안이 되었나 보다. 학교 업무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 날이 선 채로 말하다가 나와 대화를 할 때는 말투가 누그러지는 것을 보니.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의 그릇에는 한계가 있어서 일정량을 넘어서면 넘쳐버린다는.... 나는 '총량의 법칙'은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작년 학교업무에 시달렸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일도, 사람들과 평화롭게 어울리는 일도, 가족을 돌보는 일 어느 하나 흡족하게 해낸 것이 없다. 올해 나는 가족을 돌보는 것과 운동,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며 사는 것 외에는 어느 곳에도 에너지를 쓰고 있지 않다. 교감교장이 되고자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지도 않고 교육계에 무슨 커다란 업적을 남기겠다고 학교에 충실하는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 아내와 가족에게 떳떳하고 든든한 아빠면 된다.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좋은 글을 쓰는 작가 정도? 그거면 족하다. 사람의 표정은 마음의 거울과 같아서 마음이 지옥 같은데 편안한 미소가 나올 수가 없다. 속마음을 감추고 웃음 지어도 그 웃음이 어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음이 편안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여유로워진다. 그래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부터 편안해야 한다.


올해 내 직장생활을 모토가 '그림자처럼 지내기'인데 그래서 새로운 직장에서 정말 조용히 지내고 있는데 나만 보아도 힐링이 된다는 선생님이 계셔서 감사하면서도 고민이다. 이제 구석에서 가끔 나와야 하나? 아니다. 내가 뭐라고.... 그것도 내 착각이다.


그림자의 삶, 그래! 지금 아주 잘하고 있다.

KakaoTalk_20250622_235239717.jpg
KakaoTalk_20250622_235334490.jpg
그냥 딸바부팅이로 살다보니 미소가 돌아왔어요....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7화어차피 이생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