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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다가 서울에 살면 그리운 것들

제주도의 불멍과 서울의 하이볼

by JJ teacher

다시 시작한 서울살이가 5개월이 되었다.

아내와 아들은 제주에, 딸과 나는 서울에 떨어져 살며 얼마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았는지 떠올려 보면 장편소설을 한 편 써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다 살아진다고 딸은 지난 금요일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렇게 나를 째려보기만 하더니 방학이 시작되니 날 보는 시선이 세상 너그럽다. 기말고사, 예술제 기간에는 내가 말만 걸어도

"피곤해. 말걸지마!"

라며 쏘아 붙이더니 오늘 저녁 딸은 황송하게도 나와 단둘이 치킨집에도 가주셨다. 그덕에 오랜만에 치맥을 마시며 딸의 사이다잔에 건배를 하는 호사도 누렸다. 딸은 서울에 살며 제주도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토요일에는 친구와 성수동 팝업스토어에서 화장품을 한가득 쇼핑하고 네 컷 사진을 찍고 왔다. 제주도에서는 사방이 논밭, 오름, 바다, 돌담 뿐이었는데 서울에 오니 예쁜 옷가게에 백화점까지.... 한창 예쁜 것만 좋아하는 사춘기 딸아이에게 서울은 신세계이다.


나? 나는 솔직히 심심하다. 내가 서울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직장에 다니고 딸아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청소하고, 픽업가고 하는 것이 전부이다. 나를 위한 취미라고는 일주일에 3~4번 가는 헬스장이 전부이다. 연습실에서 10시가 넘어오는 딸아이 덕분에 약속을 따로 잡지도 않는다. 나의 하루는 10시가 넘어 딸아이를 집에 안전하게 데려다 놓아야 끝이 난다. 처음 서울로 다시 오게 되었을 때는 편리한 교통과 빠른 택배, 풍부한 도시의 인프라에 설레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저그렇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주도 타운하우스에 살던 때가 생각이 난다. 제주도에 살 때 나는 월요병이 정말 심했는데 일요일이 가는 것이 아쉬워 일요일 밤 늦도록 마당에서 장작을 태우며 불멍을 즐겼다. 멍하니 불을 보며 맥주를 마시면 뭔가 내가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 조그만 오피스텔에 살고 있으니 집에서 불멍을 즐기던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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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에서는 마당에 항상 텐트가 쳐져 있었다

"넌 서울에서 혼자 도대체 뭐하며 사니?"

얼마전 매형이 궁금한 듯 물었을 때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참 취미가 없는 사람이구나.'

운동, 글쓰기 외에는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제주도에서 나는 참 취미부자였다. 시간만 나면 캠핑이나 차박을 다니고 이웃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하고, 헬스장을 다니며 바프를 찍어 보기도 했고, 가끔 낚시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오름도 오르며 다채롭게 살았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내가 서울에 와서 가장 그리운 것은 캠핑이다. 제주에 살 때는 사방이 노지캠핑장이고 시설 좋은 오토캠핑장도 예약이 어렵지 않았는데 서울에 와서는 캠핑을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바비큐, 불멍....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캠핑을 가면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캠핑을 가지 못하니 심심한 모양이다. 도시에 살아보니 사는 곳 가까운 곳에 언제든 캠핑체어를 펼칠 수 있는 바다가 있고 숲, 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다시 깨닫는다.


불과 몇 달 사이

제주와 서울! 극단적인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살고 있다.

오늘밤이 지나면 월요일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때쯤 감성있는 음악을 틀어놓고 장작을 태우며 혼자 분위기를 잡고 있었겠지?

에이! 행복은 어차피 마음에 있는 것인데 제주든 서울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늘밤 장작을 태우는 대신 하이볼을 한잔 말아 마시고 잠이 들어야겠다.

그래.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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