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후 아내와 아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엄마, 나는 친구가 너무 없는 것 같아. 동생은 친구 많다고 매일 자랑인데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
아들은 항상 교우관계로 고민이 많다. 사회성이 부족한 면이 있어 친구 사귀는 것이 서툴고 상처를 많이 받는다. 이런 것을 보면 내 어릴 때 모습이랑 많이 닮았다.
"중현아, 괜찮아. 아빠도 어렸을 때 친구가 없었대."
'왜 이럴 때 나를 갖다 붙이지?'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할 때 아내의 다음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지금 아빠 멋지게 살고 있잖아."
나는 초등학교 시절 외톨이였다. 성격은 여리고 내성적이어서 눈물도 많았다. 나중에는 친구 사귀기를 포기하고 혼자 지냈다. 다행히 아이들도 나를 건드리지는 않아서 혼자 책을 보며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도 혼자 글쓰고 책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어릴 때 성격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아픈 시절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는데 이렇게 아들에게 써먹을 줄은 몰랐다. 이유야 어떻든 나에게는 칭찬이 인색한 아내가 한 말이기에 아들의 고민에 심각해지기보다는 기분이 좋았다. 이럴 때 보면 참 철이 없다.
내가 멋있게 살고 있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내실있게 살려고는 노력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의 시간만 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기기로 했다.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는 성가시고 힘겨운 일도 요즘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놀아주고, 이웃을 챙기고 함께 어울리며 사람사는 것처럼 살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책을 보고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석 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차마 헬스장을 가지는 못하고 방안에 치닝디핑(턱걸이)을 들여놓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턱걸이 20개와 레그업 20개씩 꼭 하고 출근을 한다.
'이정도 운동도 안하면 죽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어느새 석 달이 되었다. 이제는 자기 전에도 꼭 하고 잔다. 식단조절도 시작해서 밥은 하루에 급식 한끼만 먹고 야채와 달걀만 먹는다. 조금 신경 썼을 뿐인데 운동의 효과는 놀랍다. 석 달 사이에 배가 쏙 들어갔다. 역시 꾸준함만한 것이 없다. 운동을 그토록 싫어하는 내가 많이 변했다. 지금은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받아볼까도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모두 제주도에 와서 생긴 일이다.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못한다.
요즘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운동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항상 생각한다.
'이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해야할 일을 선택해야만 한다. 아무 일이나 다 할 수는 없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지만 예전의 나에 비하면 많이 진중해졌다.
'천천히, 천천히!'
일이 꼬이고 마음이 급해지면 주문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이 말을 중얼거리며 일을 하면 신기할 만큼 복잡한 일이 잘 해결된다. 예전에는 급한 일이 있으면 다급해져서 실수가 더 많았다. 요즘은 이 마법의 주문을 아내도 따라한다.
제주도가 서울보다 좋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삶의 방식, 주관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제주도는 서울보다 느리게 사는 곳이다.
제주도에서는 서울 광화문 거리 직장인처럼 정신없이 걷지 않는다.
문이 닫히는 지하철을 향해 뛰지도 않는다.
운전을 하다가도 길이 막히면 짜증을 내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걸을 때, 운전을 할 때, 길이 막힐 때
잠시 눈을 돌려 제주도 풍경을 바라본다.
고개를 돌리면 한라산이 앞에 있고 예쁜 바다가 옆에 있다.
제주도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여유롭게 바꾸어 놓는다.
나는 그렇게 제대로 숨쉬며 여유롭게 살고 싶다.
"너도 아빠처럼 멋지게 살거야."
아내가 아들에게 한 말이 문신처럼 심장에 새겨졌다.
정말 멋지게 살아야겠다.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