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은 딴 사람들 얘기인 줄만 알았다. 내가 바란 건 그냥 일 년에 한 번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더 바란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동행했으면 좋겠다 였다. 더 더 바란다면,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그런 깨인(?) 회사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74일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6개국을 누비고 다녔다. 그 출발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당시 나는 계약 만료를 얼마 안 남기고 있었다. 계약직이라는 사실만 밝히지 않으면 선망의 자리일 수도 있는 대학교 홍보팀의 여자 직원이 '나'였다. 업무는 꽤 맞았고, 그래서 더 다니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2년 계약 후 재계약을 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재정의 대부분인 입학금 자체가 감소하는 데다, 학교에서는 우수 교원과 시설을 통해 대학 평가를 상위권으로 유지해야 했다. 또 기존 정규직 직원들도 부담이었다. 호봉제의 다른 말은 근속연수만큼 월급을 올려줘야 하는 비용 상승 요인이었다. 그렇게 비용은 증가하는데, 수입은 감소하는 대학에서의 새로운 자리는 설령 그 자리가 교수라도 정규직은 요원한 일이 돼 버렸다.
6개월 전부터, 나는 구직을 시작했다. 근무했던 누군가는 계약이 끝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결혼을 했고 지금은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달콤한 뒷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나도 그 얘기 속의 그녀가 내심 부러웠지만 나의 선택은 공백 없는 커리어였다. 그렇게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곳이면서 정규직인 곳을 지원했다. 멀리 익산까지 가서 반나절 시험(1차는 파워포인트, 엑셀,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각각 문서를 완성시키는 PC 능력 시험이었고, 2차는 인적성 및 상식 시험, 3차는 보도자료 작성하는 실무시험)을 치르기도 했고, 면접 일정이 다른 곳 인적성 일정과 겹쳐서 회신이 불가능한 메일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 인사팀 연락처를 구해, 하루 연기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필사적으로 구직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익산까지 갔던 그곳은 아예 최종 합격자를 내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도 원하는 합격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만큼 낙담도 컸고, 그래서 속상했고 아팠다. 그렇게 가슴 쓰린 경험을 서 너 차례 한 후, 잠시 내 삶의 쉼표를 찍자고 했다. 자녀가 입학만 할 수 있다면 4년 등록금이 100% 지원되는, 또 병원 재단도 있어서 치료비는 물론 장례비까지 지원되는 사학연금은 말해 뭐해 정규직이 그토록 부럽다는 실업 급여를 나도 한 번쯤은 받아 보자고 했다.
공식적인 계약 만료일은 8월 23일이었지만, 야근을 하며 쌓인 연차가 꽤 됐다. 그렇게 나는 1달 일찍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다. 구직을 잠시 멈추기로 한 나는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운 좋게 제주항공에서 9만 2400원에 득템한 베트남 하노이 왕복 티켓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책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5일 말고 조금 더 길게 여행을 이어가 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가장 긴 여행은 고작 2주, 또 친구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뭐 그건 그때 판단하자’가 돼 버렸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다소 즉흥적으로 다소 확신 없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시시할 만큼 간단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카드만 넣으면 현지 통화로 인출되는 국제현금카드만 만들면 됐다. 그곳에 2달치 월급을 빵빵하게 채웠다.(동남아 물가 기준) 혹시 모르니, 100달러를 환전해 비상금도 마련했다. 그러면서 환전 혜택으로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다.(참고로 은행에서 가입해주는 여행자 보험은 최대 60일까지만 보장되니,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따로 가입하자)
그렇게 나는 하노이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2달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떠나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을 가득 들고서. 그리고 지금 틈틈이 그때 일을 브런치에 기록하고 있다.
추신. 마터 루터 킹은 옳았다. 여행에 재미를 느끼면서 매해 적어도 한 번,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수년을 지속했다. 그러다 계약이 만료되었고, 그렇게 내 생애 가장 긴 여행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나의 74일 여행은 십 년의 시간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걸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