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발견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책 <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 중 에서
아주 오래전, '비밀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시차를 고려하지 못해 비행기를 놓쳤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창피해하는 그 친구를 앞에 놓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내 얘기가 될 줄, 전혀 모르고 말이다.
맡겨 둔 짐을 찾아 서둘러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이동했다. 쾌속 열차에 순조롭게 올랐다. 터미널 1과 터미널 2가 조금 헷갈렸다. 되돌아오긴 어려울 것 같아 터미널 1에서 내려서 직원에게 확인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직원은 터미널 2에서 내 비행기가 이륙한다고 했다. 내렸던 곳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그리고 별다른 의심 없이 한국에서처럼 열차에 올라탔다. 터미널 2로 갈 줄 알았던 열차는 한 시간 후, 원점인 쿠알라룸푸르에 멈춰 섰다.
'아뿔싸.'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초조하기 시작했다. 다시 티켓팅을 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체크인 시간까진 여유가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근데 직원이 비자를 요구했다. 내가 알기론 스리랑카는 도착한 후 비자비만 내면 비자가 발급되는 나라였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직원에게 설명했다. 직원은 옆에 있던 직원에게 해당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근데 옆에 있던 직원도 비자가 필요하다고 했나 보다. ' 내가 잘못 알았나'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직원은 쪽지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넘버링 해줬다.
1. 인터넷 카페
2.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URL 주소
3. 서비스 데스크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인터넷 카페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스리랑카 비자를 발급받았다. 또 증명서를 출력했다. 마지막으로 서비스센터로 이동했다.
출발 시각을 40분 쯤 남겼을까. 급한 마음에 서비스 데스크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 없었다. 줄을 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이해해줬다. 하지만 모두가 너그러운 건 아니었다. 이십대로 보이는 중국인 여자아이가 "모든 사람이 급하다. 너만 급하지 않다. 그러므로 자리는 양보할 수 없다"라고 자기 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나오는 데 무리하게 내 요구만 관철할 수 없었다.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겠는데,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부류가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했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근데 아까 그 중국인 때문에 알았다. 그녀는 정의의 사도로 나서서, 훈계를 시작했다. "여기 와서 줄을 서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보이지 않느냐?" 맞는 얘기긴 한데, 1초가 급한 나한테는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지금 네가 일처리를 더디게 하고 있어. 조용히 좀 해 줄래? 본심이 목 밑까지 차올랐다. 비행기 출발 10분 전, 드디어 내 순서가 됐다. 급한 일이라 양보할 수 없다던 그 중국인이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 일정을 조정하는 걸 본 이후였다. 근데 갑자기 직원이 교체됐다.
이제 막 근무를 시작하는 여직원에게 "내 비행기가 십 분 후에 출발해. 난 뭘 하면 되니?"라고 물었다. 그녀는 내일 같은 시각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 가격을 얘기해줬다. 온몸에 진이 빠진다는 게 이런 걸까.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 도착하고 직원 안내에 따라 그 일들을 했던 건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순간의 마음 졸임이 자포자기에서 화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있었던 일을 그 직원에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그 직원은 "우리가 고객들에게 일일이 밥을 먹여줄 순 없잖아." 담담하게 말했다. 잠시 이 상황을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었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트북을 켰다.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비행기를 놓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소설에 나오는 복선 같은 게 아닐까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비행기에 오르지 못한 건 가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스리랑카 대신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 두 달 남짓의 여행에 마침표를 찍으라는 건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비행기표를 새로 결제하고 또 예약한 숙소에 메일을 보내고 또 무엇을 해야 하지? 한국으로 돌아갈 핑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근데 막 결제한 비자와 숙소비가 걸렸다. 또 지금 아니면 내 생애 스리랑카는 다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보다 난관에 부딪혔다고 후퇴하는 겁쟁이처럼 이 여행을 마치고 싶진 않았다. 지구 반 바퀴 돌았다는 여행자가 추천한 별이 끝내주게 아름답다던 나라, 순박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그 곳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스리랑카까지 가보기로 했다.
비행기 티켓을 다시 사려고 하는데, 비행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애초 4만 원이라는 가격이 말이 안 되는 거였는데, 나에겐 그 가격이 기준이 된 거다. 좀 전의 직원 말대로 그냥 결제할 걸 후회를 해도 때늦은 후회였다. 직원이 부른 그 가격 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비행기를 결제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24시간의 공항 체류가 시작됐다.
귀중품이라고 불릴 건 없었다. 그래도 나와 동고동락한 물건들은 소중했다. 게다가 여긴 걷고 있는 사람의 목에서 목걸이를 훔쳐 달라난다는 나라 아닌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캐리어와 일심동체가 돼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자고, 중간중간 화장실에 갔다. 딱딱한 의자에서 자는 새우잠은 전혀 꿀 같지 않았고, 평상시라면 신나게 먹었을 음식들도 식도락과 거리가 멀었다. 돈 보다 건강이라는 생각에 아니, 너무 피곤해서 캡슐 호텔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어찌나 인기가 높은지 원하는 시간대를 선점하지 못했다. 그래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남은 여행 일정에 꼭 필요한 출국하면서 큰 마음 먹고 장만한 노트북이 고장이 나 버린 것. 어댑터와 본체를 분리한다는 게 연결 잭이 힘을 잘못 받았는 지 절단됐다. 3년 가까이 쓴 노후화된 스마트폰으로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 하나가 추가됐다.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기분은 한없이 착 가라앉았다.
공항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머지않아 스리랑카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비자를 발급받고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영문일까. 나는 직원의 실수로 비행기를 날리게 된 걸까.
체크인 한 숙소 리뷰에서 비행기 연착으로 숙박비 하루치를 날릴 뻔한 걸 숙소에서 양해해줬다는 걸 읽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는데, 투숙객이 많아서 어렵다고 했다. 대신 큰 방을 제공해줄 테니, 좋은 후기를 부탁한단다. 혼자 쓰기 과한 넓은 침대에서 단잠을 자니, 어젯밤 공항에서의 노숙이 떠올랐다. 허리가 아프지 않은 푹신한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주변의 방해 없이 잠잘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지 몰랐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었다. 토스트 한 식빵, 계란 프라이, 당근주스, 커피뿐인 식사였지만 잘 자고, 잘 씻고, 먹어서 그런 걸까. 너무 행복했다. 공항에서 먹은 비싼 밥들이 왜 별로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아침을 먹고 미뤘던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동남아를 누비며 땀내에 쩐 내 옷가지들을 발로 세차게 밟아댔다. 묵은 때가 다 떨어져 나가고, 땀내 대신 비누의 향긋함이 남길 바라면서 밟고 또 밟았다. 스트레스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테라스에 옷들을 탈탈 털어서 말렸다. 깨끗해진 빨래만큼이나 나도 상쾌해졌다. 어제 공항에서 겪은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다 잊히는 것 같았다. 다들 어디론가 나간 조용한 숙소에서 책을 읽으며 빨래가 뽀송뽀송하기 마르길 바랐다.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에서의 24시간 노숙은 나에게 행복이 뭔지 알게 해줬다.
70 여일 여행 중, 아니 지금까지 여행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스리랑카에 도착해 처음 맞이한 이날 아침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