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 바간, 낭쉐에 이어, 한 때 미얀마의 수도였던 양곤에 도착했다. 상대적으로 근사한 건물, 교통 체증, 세련된 도시사람들을 바라보며 순환열차 Circular Train를 타러 갔다. (여행하면서 가능하면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려고 한다.) 중앙역에서 출발해서 38개의 정거장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데 3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가격은 들쑥날쑥한 듯 싶었지만 정가는 200짯이라고 했다.
롱지 입은 여자
지루했다는 후기를 떠올리며 한산한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롱지 longyi 차림을 한 그녀는 영어 강사라고 소개를 했다. 롱지는 미얀마 남녀노소가 즐겨 입는 평상복이었다. 롱스커트를 떠올리면 된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영화 부산행, 예능 런닝맨, 그리고 한류 배우, 가수들을 쉼 없이 얘기했다. 그 얘길 듣고, 나도 가만히 듣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미얀마에 대해 아는 것들을 총동원해 보았다.
내가 미얀마를 여행하는 이유
우선, 내가 미얀마에 오게 된 이유를 떠올렸다. 언젠가 방콕 짐 톰슨 하우스 뮤지엄 JIM THOMPSON HOUSE MUSEUM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됐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그 폭우 때문에 발이 묶이게 되어서였다. 영상은 태국 내 어부, 농부 등 기피 직업을 책임지고 있는 미얀마 노동자에 관한 것이었다. 감독은 그녀의 생활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한 지친 표정의 그녀는 한 달에 30만 원을 벌어서, 절반은 태국에서 생활을 하고, 절반은 미얀마로 송금한다고 했다. 감독은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투자는 하고 있느냐고. 그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도 버거워서 투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영상이 꽤 뇌리에 남았다. 내가 미얀마를 찾게 된 건 순전히 그 영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그녀에게 할 수 없었다.
타나가 바른 아이
그래서 다른 화제를 찾아봤다. 타나카 Thanaka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타나카는 노란빛이 감도는 화장품이다. 나무를 갈아서 얼굴에 바르는데, 햇빛에 노출된 피부를 진정시키고, 수분 공급에 효과가 있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주로 얼굴에 바르지만 남자들도 가끔 바른다.
- 타나카를 바르니?
- 집 안에서는 화이트닝 효과에 탁월해 바르는데, 집 밖에서 바르는 건 안 좋아해.
이슬람 문화권에선 외출할 때 히잡을 쓰기 때문에 화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대신 집 안에 있을 때 화장을 한다고 한다. 외출할 때 화장을 하는 한국 사람인 나는 그 얘길 듣고, 신기해했다. 근데 타나카를 화장이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얀마 길거리를 걷다 보면 3초마다 한 명씩 바르고 있는 타나카를 그녀는 미백 효과를 누리기 위해 집에서만 바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얼마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할까를 생각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그렇게 조금씩 상식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사고가 유연해 진다고 해야 할까.
- 롱지는 즐겨 입니?
- 롱지도 안 좋아하는데, 오늘은 수업이 있어서 롱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어.
한국에 대해 나쁜 얘기만 하던 과거의 내가 오버랩되고 있었다. 미얀마에 관한 좋은 얘기를 하나라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보나 피티 맛있게 드세요를 반복하며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려고 했던 친구가, 프랑스의 치즈가 끝내 준다고 자랑하던 친구가 스쳐 지나갔다. 맥주와 축구, 그리고 버터를 팬에 녹이고 치킨의 간을 구우면 엄지 척이라던 독일인 여행자가 떠올랐다. 그녀랑 한 시간 가량을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 도착했다며 내렸다. 나는 그제야 내가 타고 있는 순환열차가 눈에 들어왔다.
순환열차에서의 일상
우선,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사람들의 자세도 각양각색이었다. 옆으로도 기대기도 하고, 아빠 다리를 하기도 하고, 뒤를 돌아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에티켓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타인을, 그리고 타인에 비친 나를 의식하는 삶에 익숙해진 나는 어쩐지 저 자유분방한 삶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만원인 열차라면 몰라도 한산하니까. 정차할 때마다 등장하는 상인들도 흥미로웠다. 그들은 우렁찬 목청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판매하는 아이템도 미얀마 담배, 사과, 껌, 삶은 옥수수, 유심 뭐 안 파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했다. 물건을 팔고 계산하는 상인의 재빠름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렇게 구경하다 사과를 충동구매하게 됐다. 아마도 내가 동남아에서 산 물건 중 가장 저렴하게 산 게 이 사과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열차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고 있는데 꼬맹이 두 명이 말을 걸어왔다.
- 어디서 왔어요?
- 한국
한국이란 말을 들은 그 여자 아이들은 수줍은 듯, 해맑은 듯,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를 열 번 가량 반복했다.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열차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꽤 난감한 상황이 돼 버렸다.
그리고 또 무엇을 했을까.
이어폰을 가져왔더라면, 그래서 음악과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출발했던 곳에서 내리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순환열차 타는 법, 비용 등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요시간 3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는 고민도 그에 못지 않게 비중 있게 다뤘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