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대만을 여행하면서 꽤 좋은 추억을 쌓은 숙소였다. 그리고 딱 하루 스탑 오버하는 일정이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호스텔을 그렇게 다시 찾았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녘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했다. 바로 숙소로 이동해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옛 기억을 소환해,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근데 인기척이 없었다. 그러길 수차례, 예상치 못한 잠결을 헤매고 있는 듯한 남자아이가 문 밖으로 얼굴을 비췄다. 1인실을 내가 화장실인 줄 알고 계속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뿔싸, 너무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거듭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 어디서 왔니?
- 같이 아침 먹지 않을래?
숙소 가까운 곳, 화덕에 구운 빵과 두유를 파는 맛집을 찾을 계획이었지만 그의 제안을 수락해보기로 했다. 그가 후진 곳으로 날 데려가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찾은 곳은 원래 내가 가려고 했던 그 집이었다. 인지상정이라는 말, 이럴 때 써도 되겠지? 익숙했다. 숙소도, 숙소에서 그 레스토랑까지 거리도 그 레스토랑의 맛도 근데 화장실은....... 비록 화장실은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며 추억을 되새김하며 ‘공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수식어를 지닌, 베이터우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근데 그 아이가 동행하겠다고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코드가 안 맞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을 못한 탓에 동행을 하게 됐다.
- 이곳 식당들은 온천수로 음식을 만들어. 하지만 나는 온천수로 만든 음식을 추천하지 않아
현지인과 함께 해서 좋은 건, 이런 정보들을 들을 수 있는 점이겠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와의 동행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신 베이터우 역에서 그와 더 이상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홀가분했다.
묵은 숙제 단쉐이
다음 목적지는 단 쉐이 역이었다. 가려고 했지만 못 갔던 그래서 마음에 묵은 숙제처럼 남은 곳이었다. 애정 하는 밀크티를 대만에서만 제공되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스에 올랐다. 평일 오전의 버스는 대절한 것 마냥 한산했다. 두 손으로 액자 모양을 만들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프랑스의 그림 같았던 풍경이, 어디에 시선을 둬도 참 예뻤던 프랑스가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그리웠다. 물론 지금 같으면 대만에 가서 밀크티 들고 그냥 걷기만 해도 힐링 그 자체일 것 같지만, 프랑스를 막 다녀온 내 눈에 비친 대만은 그랬다. 버스는 정해진 정류장에서 멈추고 달리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역에선가 동양인 여자 한 명을 태웠다. 그녀는 넘치는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만두를 꺼내서 먹었다. ‘버스에서 만두를 먹는 그녀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나는 그저 창 밖을 응시했다. 근데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행복이라는 뜻을 지닌 이밍이라는 아이였다.
- 나는 혼자 여행 중인데, 너도 혹시 혼자니?
그렇게 우린 공통분모를 찾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스린야시장에 갈 예정이라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녀가 만두 하나를 건넸다. 나는 그 만두를 배가 고프지 않다고 거절했다.
혼자서 딘타이펑
스린야시장에 도착해서, 소프트렌즈를 하나 구입하고 소소한 것들을 구경했다. 그녀는 길거리 음식을 지나치지 못했다. 혼자 있고 싶어 졌다. 그렇게 그녀와 작별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타이베이 101 세계무역센터 딘타이펑이었다. 융캉제의 작은 가게로 시작해 우리나라에도 분점을 낸 글로벌브랜드로 성장한, 육즙 가득 머금고 있는 샤오롱바오와 대만식 자장면을 먹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라면 상상하지 못할 저렴한 금액을 계산하면서 딘파이펑이 적힌 펜 하나를 기념품으로 챙겼다. 가져가도 될까,라고 점원에게 물었으니 괜한 오해는 없길
다시 숙소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2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문열 작가의 책을 찾았다. 근데 보이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찾아봤는데 역시나 실패,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 여기 한국 책이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어.
- 우린 책을 치우지 않아. 거기 없으면 한국 사람들이 가져 간 거야.
원하는 대로 안 돼서 실망스러운데, 한국 사람을 도벽 있는 사람 취급하니까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시무룩해져 있는데 누군가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어를 들으니까 반가움이 앞섰다.
- 한국 분이세요?
-(놀라서) 한국 분이세요?
- 대만 사람이에요.
- 한국어 잘하시네요
- 한국어 배우고 있어요. 하정우 씨 팬이라서.... 니 콩밥 묵을래
그렇게 구수한 하정우 대사에 경계 태세가 풀린 나는 그해 7월 한국을 찾을 예정이란 대우와 편의점에 가서 캔맥주를 사 왔다. 그리고 루프탑에 올랐다. 2년 전에 머문 곳이 분명한데, 그것도 5일이나 묵었는데 편의점 가는 통로도, 루프탑도 다 새로웠다. '이런 곳이었구나.'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여행 왔다는 한 남자를 만났다.
- 타이베이엔 언제 왔니?
- 오늘
- 언제 떠나니?
- 내일
- 오늘 뭐 했어?
- 신 베이터우 도서관 갔다가 단쉐이 갔다가...
내 말을 중간에 가로챈 그는 "뭐, 쇼핑도 안 하고 도서관에 갔다고"라고 대꾸했다.
에바 항공을 타고, 파리에 갔다가 스쳐 지나기 아쉬운 마음에 하루 스톱오버를 신청했다. 그가 권장하는 바람직한 타이베이의 하루의 일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었던 나의 하루를, 그는 별 볼 일 없는 하루로 만들고 있었다. 그를 피하고 싶었지만,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르는 그 눈치 없는 아이는 그의 지나간 사랑 얘기를 지나치게 길게 자세히 풀어놓기 시작했고, 나와 대우는 그 이야기를 참을성을 가지고 들어줬다. 그러는 사이 나의 캔 맥주는 바닥을 드러냈고, 나는 다 마신 캔맥주를 핑계 대고 내 방으로 내려왔다.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 대만에서의 하루였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만나고 싶어 지고,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 바다가 보고 싶어 져. 이상하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다 만난 글귀에서 그날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