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출발한 내가 계획한 나라는 베트남을 시작으로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이었다. 반면 오스트리아에서 출발한 J는 앞서 언급한 모든 곳을 방문한 후에 베트남을 찾았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가장 좋았던 동남아의 나라를.
그는 잠시 생각을 고른 후, 말레이시아를 꼽았다. 깨끗했고, 음식도 맛있었고, 상술로 골치 섞일 일도 없었다고 그래서 가장 좋았다고 했다. 막 동남아 대륙, 베트남에 발을 뗀 나는 그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이국적인 것을 바라고 온 여행인데, 고작 그런 평이한 이유로 말레이시아가 최고라고? 말레이시아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반감이 생겼다. 그렇게 J의 추천은 별 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내 뇌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캄보디아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돈 여행자를 소개받았다. 그에게 내 계획을 들려줄 계획은 없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출됐다. 그건 당분간 동남아에 머물 예정이라는 것. 그는 내게 스리랑카를 추천해줬다. 이름도 낯선 나라 스리랑카가 그렇게 처음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직항이 다니지만 직항이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태국,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의 허브라 불리는 곳을 거점으로 두고 있을 때 여행하기 좋은 나라니 놓치지 말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의 접근성을 따져보니, 꽤 솔깃했다.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라오스가 그렇게 내 계획에서 계획으로 머물게 됐다. 스리랑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하다 보니, 말레이시아 출발, 스리랑카행 편도 비행기표가 단돈 4만 원이었다. 제주도 왕복 19900원에 이어 베트남 92400원에 이어 나의 득템 리스트가 추가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설레었다. (가끔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싼 티켓을 득템 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나도 헷갈린다. 둘 다라고 하자, 암튼) 근데 걸리는 게 있었다. 그건 말레이시아였다. 이미 한 번 내쳤던 이력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말레이시아에 대한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4만 원의 유혹은 꽤 커서 말레이시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모든 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렇게 대충의 일정이 그려졌다. 수도 쿠알라룸프르에서 제2의 도시 페낭, 그리고 제주도쯤 되는 랑카위를 둘러보고, 스리랑카로 넘어가는 걸로. 대신 좀 더 오래 체류할 수도 있었지만 가장 짧게 체류하는 일정을 선택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를 가게 됐다. 별 기대 없이. 하지만 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열흘 후, 아쉬운 발걸음이 돼 버렸다. 스리랑카행만 확정이 안 돼 있었더라면 좀 더 연장하고 싶을 만큼. 그렇게 나 역시 내가 다녀온 동남아 국가 중에 말레이시아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게 됐다. 이유는 J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남아 내내 애타게 찾던 하드렌즈용 렌즈액을 유일하게 살 수 있었다. 내가 필요한 걸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또, 음식을 먹으면서 위생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안심이 됐다. 매 끼니마다 메뉴가 아닌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건 꽤 피로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동남아 국가에서 반복됐다. 또 확신은 못하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바가지를 쓰지 않은 나라이지 않을까 싶은 믿음이 있었다. 할랄이라는 문화, 가축을 도축할 때도 동물이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절차에 따라 도살한다니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시간에 쫓겨 열차 티켓을 사고, 거스름돈을 못 챙겼는데 꽤 먼 거리까지 나를 쫓아와 거스름돈을 돌려준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그 사람의 친절함 덕분이었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남겨본다.
그렇게 계획에서 아주 많이 벗어난 나라, 말레이시아가 나는 가장 좋았다. 그러니 계획에 꼭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특히, 여행에 있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