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받은 사랑 고백
“함께 시내 구경하지 않을래?”
그녀는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직원이었다. 수영장이 딸린 그 곳의 1박 비용은 고작 5달러, 한 마디로 저렴한 숙소였다.
홀로 여행을 하다 보면 말을 거는 현지인을 종종 만나게 된다. 단순한 호기심도 있는 것 같고, (좋게 포장하면) 로맨스를 꿈꾸는 흑심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접근해오는 사람은 대개 남자들이었다. 근데 17살짜리 귀여운 여자 아이가 같이 시내를 돌잖다. 나의 대답은 예스였다.
마침 생필품 떨어진 게 있었다. 슈퍼마켓을 가장 먼저 들렀다. 구경도 할 겸 필요한 것들을 고르고 있는데 그녀도 치약을 집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대 앞에서 새털 같이 가벼운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매대에 올려놓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날 위해 시간을 내준 그녀니까 기쁘게 계산할 수 있었다. 계산을 했다.
씨엠립 대표 번화가인 펍스트리트(Pub Street)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행자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곳에서 피자와 콜라를 주문했다.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 적적하지 않고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했다.
펍스트리트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녀를 찍어줬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었다. 관광지에서 만난 웃음을 남발하며 나를 찍어주던 장사치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녀는 그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만약 그녀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내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겠지. 그럼 나는 불편해졌을거야. 그런 상황이 아니라 다행이다.’ 라며 안도했다. 또 그녀에겐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가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게 되었으니까. 십대 소녀가 주는 순진무구함, 편안함일지도 모르겠다.
걷다 보니 영화관을 지나치게 됐다. 그녀가 말했다. “제 소원은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거 에요.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영화관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이 실망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침 영화관엔 한국 영화 '부산행(Train to Busan)'이 상영 중이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뤄줄 기회가 왔고, 또 그 일이 내게 버거운 일도 아니었다. 캄보디아에서의 한국 영화 흥행에 미약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외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 이런 상황에서 쓰는 거 겠지.)
우린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난 그녀에게 팝콘을 선물했다. 그녀는 팝콘 상자를 들곤, 상영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인증샷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제법 익숙하게 그녀의 사진사 역할을 수행했다.
부산행 영화가 시작됐다. 한국어을 기대했는데, 더빙이었다. 주인공 공유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색의 낯선 언어를 들으며 영어 자막으로 부산행을 관람했다. 아마 내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답답하게 본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우리의 데이트는 막을 내렸다.
그날 이후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내 방으로 찾아 와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또 놀러가자고 졸랐다. 내가 더 이상 씨엠립에 머물지 않을 땐, 페이스북을 통해 하트 이모티콘과 함께 그립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가끔 궁금하다. 그녀는 날 사랑한 걸까. 아니면 내 경제력을 사랑한 걸까.
-2016년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본 영화 부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