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각모음 #22.햇살이 살랑인다.
아이슈페너의 얼음 조각이 소리를 내며 커피잔의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더 이상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을 덮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지금 연우의 뇌구조를 사진으로 찍는다면 아마 가장 크고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은 제이한 일 것이다.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할수록 그와는 반대로 점점 더 그의 얼굴이 깊게 뿌리내렸다. 새벽까지 뜬 눈으로 지새우다 어스름히 밝아오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늦잠을 잤지만 왠지 의욕이 생기지 않아 느릿느릿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루틴처럼 카페에 들린 연우는 카페인 충전을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큰 사이즈로 주문하고 늘 앉던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곧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도저히 오늘은 수업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햇살은 연우를 향해 살랑이고 있었다.
‘’딸랑”
누군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쾌한 발걸음이 연우를 향해 다가와 연우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연우가 고개를 들자 제이한이 연우를 향해 손을 내밀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누구든 무장해제시킬 그의 미소에 연우의 심장은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지연우, 여기서 뭐해?
수업 늦겠어, 나랑 같이 가자!”
‘잠깐만’ 이라며 사라졌던 그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타나 손을 내밀고 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황스러움에 몸이 얼어버린 연우의 귀가 빨개졌다. 연우는 그가 내민 손을 바라봤다. 하얗고 긴 그의 손가락, 그 손을 잡고 싶었다.
이 손을 잡아도 될까?
여전히 햇살은 연우를 향해 살랑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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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 미지근한 매거진 }에서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