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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Jan 18. 2024

“먹흘애요”

  간혹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가 있다. 갑자기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가령 가까운 사람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듣게 될 때가 그렇다. 자신에게 매몰돼, 곁에 있는 사람을 속상하게 했구나 하고 잠시 나와 떨어져서 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면 스스로 실망해 개선점을 찾아야 할 때는 일부러라도 빠져나와 나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건 매우 단순한 경우인데, 그냥 어쩌다가 이유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앞선 사례와는 다르게 마음이 아프다거나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어쩌면 더 당황스럽다. 

 그런 경우는 꽤 있다. 친한 친구와 같이 있거나 연인과 시간을 보낼 때면, 어린아이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낯선 스스로를 본다. 하지만 그것도 반복되다 보면, 내성이 생겨 그런 내가 익숙해진다.      

 “먹흘애요”를 해버린 그 장소가 회사이고, 그 상대가 회사에서 만난, 마음은 다 보이지는 않는 약간은 서먹한 동료라 그랬을까.     

 4시쯤에 한 선배가 과일이 올라간 요거트를 자리마다 올려놨다. 원래 요거트를 일부러 사서 먹지는 않는데, 마침 출출하기도 해서 받자마자 먹었다. 시원하기도 하고 플레인 요거트 위에 올라간 딸기랑 먹으니 새콤달콤한 게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인지, 아니면 새콤해서 그랬는지, 그때 작은 눈이 좀 잘 떠진 것 같기도 한 게 눈이 탁하고 트이는 맛이었다. 그러다 맞은편에 앉는 동기가 왔다. 


 “이거 뭐예요?” 동기가 물었다. 

 “아 선배가 하나씩 올려두던데 먹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전 다 먹었어요.” 다시 한번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런가. 몸은 피곤해도 꽤 밝게 답했던 것 같다. 

 “아... 혹시 드실래요?” 동기가 물었다. 


 그랬다. 동기는 과일을 싫어한다.

 동기가 받은 건 블루베리와 청포도, 그리고 견과류가 한 줌 들어가 있었다. 동기는 견과류도 싫어한다.     

 그 사실이 생각나서 조금 머뭇머뭇하다가 처치해 줄 겸 “그럼 먹흘애요”하고 말이 튀어나왔다. 입술에서 정확한 발음이 만들어지기 전에 말이 먼저 나와서 발음이 헛돈 게 아닐까 싶다. 

 역시나 그 요거트는 그 요거트대로 맛있었다. 출출하던 배는 요거트를 2개나 먹고 나니 출출하던 배가 불러 만족스러운 상태로 퇴근하는데, 누군가 사무실에서 말한 ‘먹흘애요’가 떠올라 생각을 더듬어 보니 나였다. 뒤늦게 창피하지만, 특별히 식탐을 부린 것도 아니고, 동료가 정말 싫어해서 준 걸 알기에 떳떳하다고 애써 생각해 보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완전히 가시진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조금은 기쁜 마음이 드는 건 그 부끄러움 너머로 자유롭다는 마음도 든다는 거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아니면서, 또 세상에 그런 일도 없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런지, 넵넵 그러고 다니는 회사. 채광은 좋지만, 볕이 안 들어 서늘하고 꿉꿉한 사무실에서 식탐 부리는 어린애처럼 다급히 말한 것에서 느껴지는 해방감 때문이려나. 그게 아니면 실은 낯선 게 아니라, 오랜만에 내 진짜 모습을 보게 돼 느끼는 어색함이려나. 

 뭐가 되었든, 내가 했지만 내가 하지 않은 듯 복화술로 튀어나온 그 말을 종종 듣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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