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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Mar 29. 2016

그의, 우리의 성장 이야기

존 윌리엄스, 『스토너』


                

이 책 주인공인 스토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의 삶에 대해 성공하지 못한 불행한 삶이라고 말한다. 친구와의 우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도, 그 어느 것 하나 성공한 것이 없다고 말이다. 스토너 스스로도 삶의 막바지에 그렇게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뭐 꼭 그렇게 성공해야 불행하지 않은 인생인가? 우리의 삶은 그의 평범한 생애보다 나은 것이 있었는가? 그는 적어도 원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과 함께 일생을 보냈다. 문학에 대한 확고한 집념이 있었다. 죽는 그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만큼 멋있는 삶이 있을까 싶다. 저자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감상일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 때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문학의 감동 속에 빠지게 되면서, 전혀 문학 쪽으로는 생각조차 없었던 농촌청년 주인공은 문학의 길로 발을 들여놓는다. 문학을 공부하는 흥미로움을 느끼며 그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문학 속에 푹 빠진다. 마침내 교수의 위치까지 올라서게 된다. 명예가 이끄는 삶이 아닌 그야말로 문학을 사랑함으로 그에 이끌려, 그는 그 안에서 성장해 나갔다.


책을 읽으며 그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낀 단 한 번의 사건은 결혼이다. 결국 그 불행한 결혼은 문학의 아름다움 속에서 현실을 잊고 황홀한 감동으로 살아가는 불륜의 연인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삶에서 불행한 한 면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의 설익었던 결혼과, 후의 아쉬움을 남긴 그녀, 캐서린이 아닐까 싶다. 문학을 통해 그와 그녀 단둘이서 만들어갔던 아름다운 세계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형태의 세계는 아니었으므로.


평범한 한 사람의 일과 사랑 등 성장기가 잔잔하게 담겨있다. 엄청난 사건이 꼬이고 꼬인다든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소설적인' 장치가 이 '소설'에는 없다. 우리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한 삶의 모습임에도, 흔한 사람들이 겪을만한 사건들의 연속임에도, 멈추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었던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인 것 같다. 그가 느끼는 삶의 갈등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기에.


그래도 나는 그 평범한 인생 속에서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본 스토너는 좋아하는 것들에 마음을 쏟으며 묵묵히 열심히 살았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왜 이렇게 현실 속의 인물 같을까.


그렇게 잔잔하고 평범한 이야기 가운데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흥미로움은 고급스러운 문장들 속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작가의 소설인데도 편히, 그리고 부드럽게 읽혔던 것을 생각해 보면, 번역도 번역이지만 작가의 필력이 굉장한 듯 하다. 





          

* 남겨두기


스토너는 갑작스레 감정을 터뜨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절망이 그토록 무거웠다는 것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다 못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다시 말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 264 p.


1937년 여름에 그는 학문에 대한 과거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젊음이나 나이와는 상관이 없고 현실과도 유리된, 호기심 많은 학자의 열정으로 그는 아직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유일한 삶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절망의 순간에도 자신이 그 삶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311 p.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가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38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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