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다 다 달라
뭔가 배울 때 나는 책으로 시작을 한다.
심지어 몸으로 배워야 하는 서핑이나 골프조차도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은 이해를 못 했지만, 나는 일단 머리로 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다.
출산과 육아가 처음이었던 나는 이 분야 역시 책으로 시작을 했다.
첫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시중에 나와있는 각종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원리를 알고 규칙을 찾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너무 귀여운 내 아이가 아닌가.
하지만, 이 육아라는 분야는 원리와 규칙이 1도 통하지 않았다.
국내 유명 교수님, 국외 유명 전문가들의 책을 다 읽어봤지만 우리 아이의 수면 패턴에 대해 설명한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를테면 신생아는 3시간마다 깨서 먹다가 백일이 지나면 저녁에 자서 아침에 일어난다는 백일의 기적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맘카페에서도 백일의 기적을 마주한 엄마들의 경험담이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우리 딸은 백일의 기적은커녕 돌의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3시간마다 깨는 신생아 패턴을 갖고 있었고, 그나마 그 정도 시간 동안 안 깨고 쭉 자는 것도 감사할 정도로 10-20분만 자고도 3시간 잔 것처럼 눈을 말똥말똥 뜨곤 했다.
육아서를 다 갖다 버리고 싶었다. 자는 패턴, 먹는 패턴 등 책에 나오는 이론이 우리 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른지 이 분야에 대해 내가 책을 따로 쓸 판이었다.
사람답게(?) 저녁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기적은 무려 두 돌이 되었을 때 일어났다.
나에게 이게 정말 기적이었던 이유는 그때 둘째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첫째가 여전히 신생아 패턴을 갖고 있는데 또 다른 신생아 둘째가 등장해서 둘의 수면패턴이 엇박자라도 나면 나는 이제 24시간 1 교대 근무구나 싶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정말 기적을 내려주신 건지 둘째와 함께 조리원에서 나와 이제 본격적인 24시간 근무를 시작하려던 첫날! 우리 첫째가 저녁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걸 두 돌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둘째는 육아서에 나온 이론대로 컸다는 것이다.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어쩜 그리 교과서 같은지.. 너무 예측이 돼서 이런 아이는 열명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갖다 버리려던 육아서를 다시 펼쳐보며 우리 둘째의 먹고 자는 패턴을 비교해 보며 '이래서 전문가들이구나'했다.
첫째는 육아서와 다르게 크는 아이라는 걸 경험한 건, 이후 나의 육아방식을 유연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수면 독립이다.
육아서에는 빠르면 돌부터 부모와 다른 방에서 재우기를 권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너무 서양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애초에 도전해 볼 생각도 하진 않았다. 그래도 주변에 보면 대체로 5-6살부터 본인 방에서 재우도록 교육을 시키는 것 같았고, 늦어도 초등 입학즈음에는 아이가 혼자 잔다고들 했다.
어릴 때 두 돌의 기적을 보여줬던 첫째는 겁이 참 많았다.(지금도 많다)
누군가에게 맡겨 키운 적도 없고, 워킹맘이었던 적도 없이 태어났을 때부터 늘 엄마가 끼고 키웠는데도 초5-6학년 될 때까지 집에 혼자 있는 걸 못했다. 이런 아이가 잠을 어찌 혼자 자겠는가.
몇 번 권유는 해봤지만, 호기롭게 도전했다가도 1시간도 안되어 무섭다고 안방으로 오곤 했다. 아이가 오든 내가 가든 그렇게 밤새 4-5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아이방에서 나도 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너무 피곤해서 그냥 혼자 자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하고 다시 안방으로 아이침대를 들여놓았다.
첫째가 중3이 되던 나이에 미국에서 1년을 지냈다.
미국집에 입주를 하고 침대를 들여놓던 첫날, 이제 중3이니 당연히 따로 자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이라서 너무 무섭다고 며칠만 엄마랑 같이 자면 안 되겠냐고 한다. 알겠다고 한 게 결국 1년 내내 같이 잤다.
그래서 우리 큰딸은
언제부터 잠을 혼자 자기 시작했냐 하면...
한국으로 돌아온 고1 때다.
두 돌의 기적 이후로 고1의 기적을 보여준 우리 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 딸은 잠독립을 고1에 했다고.
덩달아 둘째도 중3에 잠독립을 했다.
낮에는 사춘기 청소년이고 밤에는 애기같이 엄빠와 같이 잤던 우리 아이들.
지금도 가끔 엄마옆에 누워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게 가장 좋다는 아이들이다.
아이가 원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게 이렇게 오래일 줄은 몰랐지만, 스무 살 되기 전에 독립한 게 어딘가 싶다.
그래도 아이들의 정서만큼은 지구 최강으로 안정되어 있는 것 같아 잘 기다려준 것 같기도.
아이마다 참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