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출렁거리는 뱃살도 여기서는 익숙하고 평범해진다.
야외에서 동양인과 유럽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햇볕에 대처하 는 자세에서 나온다. 피크닉을 가고 동양인들은 어떻게든 그늘을 찾아 앉으려고 한 반면, 유럽 친구들은 햇볕이 가장 좋은 곳에서 돗자리도 없이 널브러져 있다. 유럽에서 유럽법에 따라 나도 그렇 게 했더니 이미 얼굴을 비롯해 온몸이 까무잡잡 해졌다. 그러더니 독일 친구가 대뜸 너는 부자냐고 물어보더라, 독일이 훨씬 여름에 햇볕이 강하긴 하지만, 겨울이 조금 길고 더 흐린 날도 많다
그래서 '구릿빛 피부 = 일 안 하고 남유럽으로 휴가 가는 부자'라는 인식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은 여름이 길고 햇볕이 상당히 강해서 피부가 타는 게 오히려 정상이라 선탠을 즐기고 있 다. 해변가에는 너무 익숙한 파라솔도 대여업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냥 수건만 펴놓고 햇볕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멋진 몸을 가진 사람만 노출하는 것이 일종의 특권처럼 되어있다. 긴 시간 유교 국가였던 것의 영향 때문인지, 멋진 근육을 가진 남자만 웃통을 까고 군살 없는 몸매를 가진 여 자만 비키니를 자신 있게 입는다. 심지어 요즘은 래시가드가 유행 해서 아예 다 몸을 다 가리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근데 스페인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보면 뱃살 불뚝한 할아버지들 도 거리낌 없이 웃통을 벗고 있고, 흰머리가 내린 할머니들도 비 키니를 입고 누워 있다. 게다가 여성들이 비키니 상의를 입지 않 고 선탠을 즐기고 있다. 이곳은 딱히 누드비치가 아니지만, 비키 니 자국이 남는 것이 싫었는지 아예 입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꽤 나 많다.
한평생 동아시아의 보수적 유교 국가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갑자 기 옷을 벗어 대는 옆자리 사람들에 화들짝 놀랐다. 감히 눈을 어 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난감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스페인의 일상 중 한 순간 일 뿐이다. 한 명 만 토플리스로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으니 몇 분 지나면 익숙 해지고 별 상관없게 된다. 나도 곧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에 입고 있 던 하와이안 셔츠를 풀어 재끼고 뱃살을 출렁이며 상체를 드러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