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증명한 로맨틱의 어원(상)
낭만(浪漫)적 이라는 단어는 로맨틱(Romantic)을 그대로 한 자로 음차한 단어다. 로맨틱은 Roma(로마)라는 단어에, 접미사 '-ntic'이 붙어 '로마스러운'이란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당연하 게도 단어의 어원도 로마로부터 나왔다.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중세 유럽에서 문 자란 신성하고 귀족적인 것이어서 자연스레 문자로 쓰인 문학도 지배층만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세 후반기에 상인, 수공업자 등 신흥 계급이 생겨났고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고유의 사투리를 가진 문학들이 쓰이기 시작하며 문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옛 로마 지역(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는 사랑과 연애, 영웅들의 대한 이야기가 음유시인들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로마 사투리를 뜻하는 Roman(로망)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사랑과 기사들의 영웅 이야 기 장르의 소설'이라는 의미로 확대 되었다. 그리고 접미사가 붙어 '로마어로 쓴 책에서 주인공 같은'이란 뜻의 단어로 'Romantic'이 사용되며 현재의 정서적이고 애정적인 상태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 다. 물론 지금의 로마는 의미가 축소되어 국가나 넓은 지역이 아니 라 이탈리아의 수도를 의미하지만, 나는 이 단어의 어원을 현대의 로마에서 증명하고 왔다.
7월, 한여름의 이탈리아는 너무나 덥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았던 서유럽과 달리 따가운 햇살로 가득한 여름의 로 마는 중간에 그늘에서 쉬어가지 않으면 체력이 금세 바닥나고 만 다. 그래서 천천히 같이 쉬면서 다닐 동행을 구하기 위해, 하이델베 르크에서 찍은 내 사진을 개인 일정과 함께 SNS에 올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녀는 현재 런던에 있으며 곧 로마에 도착하고, 남부 투어(포지타노, 나폴리, 폼페이 투어)를 할 계획이 라는 그녀의 말에 투어 여행사와 일정을 따라 예매했다. 그런데 내 가 아직 출발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연락이 왔다. 비행기 일정 때 문에 전날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나는 이미 다녀온 런던 여행 이 야기, 대학교 이야기.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상대와 이렇게 카톡 하 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게 복선 일 줄은 몰랐다
로마에 도착한 나는 예정되어 있던 바티칸 투어를 마치고 저녁 을 함께하기 위해 계속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바티칸 의 아름다운 광경을 사진으로 너무 많이 찍다 보니 무리한 핸드폰 의 배터리와 보조 배터리까지 모두 방전되었다. 만날 시간과 장소 를 미리 정해놔서 다행이었지만, 내가 현재 있는 곳과 가는 길, 그 리고 지금 시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도시답게 아스팔트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자갈길이 불편하고 복잡한 로마이 지만, 관광객들은 경찰들에게 길을 잘 물어보지 않는다. 그 경찰 들은 치안을 위해 로마의 광장마다 총을 들고 중무장을 한 군경찰 (카라비니에리)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신경 쓸 겨 를이 없었고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가는 군경찰에게 절 박하게 다가가 물어 가며 겨우 스페인 계단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미 약속한 시각은 좀 지났고, 약간 화나고 무료한 표정으로 스 페인 계단에 앉아 있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간단한 샌드위치 로 같이 저녁을 먹고, 로마의 야경을 본다며 핀초 언덕이라는 곳으 로 갔다. 마침 공원에서는 결혼식 전야제를 하는 사람들이 이리저 리 몰려다니면서 일종의 거리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들의 행 복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알릴수록 자신이 행복해지는 듯 했다. 로 마의 밤과 일상을 구경하며 와인을 마시며 잡담을 했지만, 아직 서 로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멀어진 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바티칸 쿠폴라 올라갔다 온 나와 점심으로 피자를 같이 먹고,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가봤던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진실 의 입 등 로마를 같이 돌아다녔다. 더위 가득한 로마 덕분에 중간 중간 시원한 성당에서 쉴 수 있었고, 가톨릭 신자인 그녀가 조용히 기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 을 먹을 때가 되어 콜로세움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옆 테이 블의 사람이 3번이 바뀔 정도로 오래 동안 앉아 있었다. 트러플 크 림 파스타와, 칼쵸네, 와인을 먹는 동안, 많은 대화를 하면서 시간 이 흘렀다. 그리고는 내가 말했다.
'6살 많은 사람이 말 놓으면 많이 어색해요?'
20대 대학생들이 다 그렇듯이 조금 친해지면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을 섞어 쓸법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깍듯하 게 존댓말을 썼다. 이탈리아 와인으로 인해 배에 힘이 풀린 내가 던진 한마디에 그녀는 많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침착하게 서로 말 을 놓기 시작했고, 로마 테르미니역 주변은 치안이 안 좋다는 핑 계하에 다음날 투어에 늦잠을 잘까 걱정하는 그녀와 로마의 밤거 리를 같이 걸으며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로마의 식당, 로마 의 밤, 로마의 거리, 모든 것이 로마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