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증명한 로맨틱의 어원(하)
일어나자마자 그녀에게 하는 모닝콜로 아침을 시작했다. 다행히 남부 투어에는 늦지 않았지만, 한국인의 투어답게, 상당히 빽빽하 게 짜인 일정이었다. 폼페이의 아름다운 폐허는 금세 질렸고, 버스 에서 바라본 황량한 수도교는 로마 제국의 위엄과 졸림을 함께 주 었다. 다들 여행의 설렘으로 들떠 있던 버스에서, 내가 피곤한 잠에 빠져들 때마다 서로의 어깨가 닿으며, 내 마음도 조금씩 닿아갔다
밥과 교통비를 아껴가며 여행하던 나에게 투어에 미포함된 폼 페이의 한 끼 당 10유로짜리 식사는 너무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 녀는 내가 길가에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자는 말에도 흔쾌히 승낙했다. 나 혼자 폼페이 근처에 가면 작은 잔디밭이 있는 공원 에서 여유롭게 먹을 것을 꿈꿨으나, 폼페이 유적을 벗어나니 식당 도 잘 없고 그냥 시골 길바닥뿐이었다. 아직도 이건 그녀에게 많 이 미안하다. 그냥 식당에서 먹는 것이 나았다.
버스를 타고 계속 이동하며, 아말피 코스트와, 나폴리 등 지중 해 해안을 사람들 머리 너머로 봤다. 내가 바보 같이 해안가 쪽 좌 석이 아니라, 절벽 뷰 좌석에 앉았다. 가는 방향 기준 오른쪽 좌석 에 앉아야 해안가이다. 하지만, 남들은 밖에 보느라 정신없을 때, 나는 또 그녀의 어깨에 기대 두근 되느라 좋았다. 쏘렌토 전망대 에서 내리라는 가이드의 음성이 들리고, 잘 안보이던 지중해가 눈 앞에 펼쳐졌다. 따가운 태양 아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지만, 쏘 렌토를 바라보며 활짝 웃던 그녀를 보느라 막상 파란 하늘의 쏘렌 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포지타노 해변에 도착했다. 한국인만 받으려고 작정한 건지 태극기를 건 기념품점에서 새콤한 레몬 맥주를 사고 딱 한 시간의 자유시간 동안, 뽕 뽑으려고 지중해에서 촉박하게 수영을 했다. 한 시간이 아니라 한 달을 머물러 가고 싶은 햇살과 그리스 신화의 여신 테티스가 바닷가에서 걸어 나올 것 같은 파도에서 하 얀색 파도 거품 같은 그녀와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헤르메스처 럼 빠르게 지나갔다.
지중해를 가르는 페리를 타고 살레르노로 이동하는 걸 예상하 지 못한 나는, 배에서 보는 이탈리아 반도의 아름다움과, 수평선, 지중해의 청량함이 시원했다. 하지만, 30분을 넘어가니 춥고 질 렸다. 센 바람과 바다를 유랑하는 흰 요트들을 보고 있다 보니 예 전에 유명하던 드라마의 구절이 생각났다.
'흰 천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추억의 드라마가 돼버린, '꽃보다 남자'의 대사가 생각난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핸드폰으로 꽃보다 남자의 OST를 재생하기 시 작했다. 이어폰을 한쪽 씩 나눠 낀 체 핸드폰 신호가 잘 안 잡혀 뚝뚝 끊기는 'Almost Paradise 아침보다 더 눈부신~'가 서로의 귀에 들렸다. 그 순간 서로의 마음도 듣고 있는 듯했다. 난간에 걸 쳐진 손을 잡아도 그녀는 손을 피하지 않았지만, 둘 다 선글라스 를 쓰고 있어서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 순간이 그랬다. 그녀에게 입 을 갖다 대었고, 입에 닿았다.
오는 버스 내내 나 어깨에 기대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워 서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유럽 의 마지막 밤이라, 로마의 야경 투어를 하기로 했다. 로맨틱한 분 위기 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던 로마가 자연 스레 로마스러운 분위기를 내었다. 밤이라 사람도 별로 많지 않고, 주황 빛 가로등만 빛나던 로마의 밤거리는 자연스러운 로마틱이 었고, 우리는 로맨틱한 로마의 밤거리에서 로마스럽게 서로를 알 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