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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7] 원래 이렇게 빠른 거야?

임신 11주 차, 1차 기형아검사

by Sylvan whisper


'우리 아가는 무조건 건강해 걱정 마'


나는 처음 임신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 아기의 '건강' 혹은 이 '생명의 튼실함'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시기에 찾아와 준 친구이기 때문에 우리 아가는 분명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운명'이 비껴갈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 시대의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노산'의 문턱에 걸쳐있던 30대 부부였다. 우리도 당연히 수개월은 걸려야 임신에 성공할 줄 알았으나, 너무도 빨리 찾아와 준 우리 아가. 임신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없었기에 나는 이 친구의 '성장'에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감히 건방진 예상을 했다.


반면에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아내는 우리가 결혼한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걱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잘 이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아내의 그런 걱정의 기저조차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첫 진료를 받을 당시에도 아내는 임신 극초기에 마셨던 맥주 한 잔, 처방받아 먹었던 코감기약, 함께 뛰었던 러닝 등 모든 게 걱정 요인이었다. 심지어 아직 초기지만 아직도 신체에 변화가 거의 없다는 사실 까지도 아내에겐 걱정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나는 이때도 이런 요인들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했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가 없이 지나갔기에, 나의 이런 가벼운 믿음에 신뢰도가 쌓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태도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부모의 심리상태도 태아에게 분명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검사, 적절한 조치들을 동반한다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 이러한 문제가 엄마, 아빠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관찰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가령 나는 앞서 묘사한 것처럼 건방진 안심을 해왔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 공포가 더 진하게 다가왔던 사유는, 이 공포가 찾아오게 된 뚜렷한 사유나 트리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어느 날 평소처럼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내게 그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찾아왔다.


'검사 수치가 하나라도 정상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단 하나라도...


아내에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런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지닌 채 산부인과로 2차 진료, 그러니까 1차 기형아검사 진료를 받으러 향했다.




아기는 첫 진료를 받았던 9주차, 2.95cm에서 3주가 지난 지금 3센티가 더 자란 약 6cm가 되어 있었다. 입체 초음파를 실시한 덕에 눈코입의 형체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얌전했던 우리 아가는 조금씩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엄마 뱃속에서 자꾸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려 했다. 아마도 안정감을 느끼는 위치와 자세겠지. 팔로는 계속 얼굴을 가리고 다리도 계속 모으고 있었다. 한마디로 몸 전체를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움찔거리는 순간을 포착해서 눈코입의 형상을 봐야 했다. 이 녀석 얌전했던 엄마아빠의 어린 시절을 닮았구나.


손가락 하나 정도 되었으려나? 2.95cm였던 우리의 아가는 몇 주 사이에 금방 자라나 있었다. 기본 초음파 검사와는 다른 입체초음파를 실시했다곤 해도, 이제는 정말 눈코입까지 다 알아볼 수 있었다. 말이 3cm 지, 우리 아가는 2배로 성장해 있었다.


'원래 이렇게 빠른 거야?'


아가는 따라잡을 수 없을 속도로 커가고 있었다.




1차 기형아 검사는 초음파를 통한 태아의 코뼈, 신체구조를 확인하고 무엇보다 '목덜미 투명대'를 검사한다. 이 목덜미 투명대 검사 시 일정수치를 벗어나면 기형아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 아가는 목덜미 투명대와 코뼈 등의 신체 구조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러나 기형아 확률은 '2차 기형아 검사'가 실시된 후에나 그 확률이 진단되는 것이었기에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외형으로 당장에야 확인 가능한 항목에서만 정상이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이 진료를 받기 전 먼저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 있는데, 만약에라도 이 외형검사에서 조금이라도 걱정이 될만한 결과가 나오면 '니프티 검사'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 '니프티 검사'라는 것은 12주 차의 빠른 시기에 더 높은 정확도로 기형아 확률을 알 수 있는 검사였다. 이 검사는 조금 더 비싼 비용을 동반했는데, 나는 이게 퍽 야속했다. 우리나라 같은 세계적 저출산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이런 자잘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신혼부부들을 갉아먹게 하다니!

조금 비용이 들더라도 니프티 검사를 해야 했던 걸까? 아빠로서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는데,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내 모습이 야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가는 '2배'가 되었다. 이번 진료를 받으러 오기 전, 내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미지의 공포심이 증폭된 것처럼 말이다. 걱정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평범한 오후, 딱딱한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을 때조차.


'원래 이렇게 빠른 거야?' 아기에 대한 걱정, 원래 이렇게 고요하다가도, 폭발하듯 커지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러한 감정들은 부모가 되어간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격동의 마음가짐과 감정을 겪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전 연습을 시켜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한줄정보


1. 아빠의 태도(낙관·불안의 균형)와 정서 조절은 임신기 관계 안정과 의사결정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2. 1차 기형아 평가는 보통 NT(목덜미 투명대)·코뼈 등 초음파 + 혈액검사를 통합해 위험도를 추정한다.

3. 2차 선별은 주로 임신 중기 혈청검사(쿼드 등)로 추가 추정을 하며, 필요 시 정밀 초음파나 진단검사로 이어진다.

4. NIPT(니프티 등)는 임신 10–12주 전후에 가능한 선별검사로 다운증후군 등 염색체 수적 이상 위험도를 높은 정확도로 추정한다.

5. 선별검사는 ‘확률’을 말해 줄 뿐이며, ‘진단’(양수·융모막 검사 등)과는 목적과 정확도가 다르다.

6. 비용·정확도·시기는 병원과 지역에 따라 달라 ‘우리 상황표(예산·시기·불안도)’를 만들어 비교하면 의사결정이 쉬워진다.

7. 임신 초기의 가벼운 음주·감기약 복용·가벼운 운동 등에 대한 걱정은 흔하며, 의료진과의 사실 확인이 불안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8. 불안은 보통 ‘정보 부족’과 ‘통제감 부재’에서 커지므로, 다음 진료 일정·검사 항목·결과 해석 루틴을 미리 정하면 심리적 완충이 된다.

9. ‘부모가 되어가는 증거’라는 프레이밍은 불안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성장 서사로 전환하는 유익한 자기 대화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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