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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일기 #6] 사실은 깜깜해

임신 11주차,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

by Sylvan whisper

이 이야기는 훗날 네가 읽게되면 실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불안으로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난 인생의 모든 것을 계획하고 또한 체계화 시키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 진리를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수 많은 실패 혹은 통제불능한 변수를 겪어야 했다. 수능, 대학생활의 목표, 조종사의 꿈, 근무지, 결혼 그리고 임신까지, 내 삶의 ‘국면’이 전환되는 나의 삶에 있어 가장 큰 계획과 목표들. 이 목표들은 단 하나도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았으니까.


우리 결혼생활의 신혼기간, 나의 안식년, 아내의 직장, 그리고 우리 부부의 여행 계획따위 같은 소소한 요소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임신'이라는 것은 계획하지 않은 시기에 불현듯,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 갑작스러운 방문은 우리의 삶의 국면을 즉각 전환시켜버렸다. 모든 계획을 폐기 및 수정 하였고, 많은 목표들을 포기했다.




우린 30대 중반의 부부이기에 ‘난임’ 문제를 겪지않았다는 사실 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받았다. 우리 또한 결혼생활에 있어 어쩌면 가장 큰 짐이 될 수도 있었던 ‘난임’을 회피 할 수 있어 어찌나 다행스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 아기는 너무 자랑스럽고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임신이라는 삶의 국면 전환이 원치 않았던 시기와 각도였음'일지라도 사실 다 괜찮아야 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으로 인해 우리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폐기 및 수정하고, 크고 작은 목표를 포기하는 등의 시행착오들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괜찮았다. 아니 분명 괜찮음을 넘어 행복했다. 그렇지만, 많은 웃음과 환호의 순간을 지나치고나면 무언가 마음 속에서 꿈틀 거렸다. 나는 애써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꿈틀거림을 무시하려 했는데, 사실 그것의 존재감은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꿈틀거리는 무언가, 개념 혹은 감정들은 결국 한 문장을 이루어 내 머리속으로 기어올라 왔다.


‘사실은 말야, 조금은 깜깜해’






아기가 찾아옴에 있어, 남편의 역할은 ‘가장' 중요하다고는 표현 할 수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남편이 맡아야할 역할은 ‘다양하다’라고는 말 할 수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좋은 남편이 되어서 아내를 지켜주고 아껴주고 보살펴주어야 한다. 임산부가 된 아내에게 더 특별하고, 더 큰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임산부의 체력, 영양, 건강, 감정 관리를 위한 지식과 행동력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는? 입으로 말하는법이 없는 태아를 위해서는 더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공부할 것은 산더미다. 나는 임산부와 아기를 위해 알아야할 것들, 준비해야할 것들을 환경, 감정, 지식, 건강, 경제로 나누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독이 된 것이었을까? 나는 조금씩, 이렇게나 많아? 이렇게나 막막해? 이렇게나 세세해? 따위의 혼란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임신을 하게되어 복직을 포기하게 되었기 때문에, 남편 혹은 가장으로서의 나의 역할 중 비중이 큰 것은 명확했다. ‘재정적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출산을 위한 정부지원정책, 지방별 지원정책을 총정리 했다. 꽤나 많은 지원금이 있었지만 ‘충분’치는 않았다.


‘모아둔 돈도 많지 않고, 아직 자가도 없는데, 어떡하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든 되겠지’ 보다는 ‘어떻게 해야하지?’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부류의 사람이다. 이 깜깜함, 혹은 깊숙한 어딘가에 숨어있는 이 ‘걱정’은 감정의 기차의 맨 뒤칸에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기쁜 순간들을 보내고 나면 혼자 조용히, 둥둥 부유하였다.




가령, 부모님들께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는 이런식으로 나타났다. 서프라이즈 초음파 사진과 축하의 박수가 흐르고, 어떤 아기가 나올지 서로간의 예측을 하며 한바탕 웃는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웃음과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설렘이 대화의 분위기를 따듯하게 데펴놓는다. 하하호호, 온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식사자리에서 떠날 때, 함박웃음과 미소 뒤에 내게만 굳어지는 표정이 찾아오는 것. 그리고 그 표정을 숨기기 위해 맨 뒤로 걷게되는 것. 가령 이런 것이었다.


이렇듯 나는 자꾸만 한켠으로 불안을 숨긴 채 우리 아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보다 더 큰 능력을 지녀서 더 나은 환경에서 아가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건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 전부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나의 이 '걱정'들은 우리 아가, 우리 가족을 위해 더 나은 환경,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집, 더 똑똑하고 다정한 아빠 그리고 남편.. 이러한 '더'를 향한 욕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훗날 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접하게될 너에게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라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아빠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변명하고 싶다.




한 줄 정보

1. 임신소식을 접한 뒤 엄마나 아빠가 갖는 불안증세, 두려움은 매우 흔한 감정이다. 이는 '책임감'이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

2. 임신이 인생의 계획을 뒤트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묻는 순간이 된다.

3. 신생아를 갖게된 부부를 지원하는 정책은 '정부'정책만이 전부가 아니다. 순서대로 알아보자, 정부지원, 시 혹은 도 차원의 지원, 서울의 경우 '구'차원의 지원까지 존재한다.

4. 이러한 정부, 지자체 지원은 지역별로 다르다.

5. 막막함이 찾아올 땐, 임신기 출산직후 등 개괄적인 계획 예산 등을 짜보는 것도 좋다. 간접적으로라도 다가올 변화와 과업들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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