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2주 차, 아내가 임산부가 되면 남편의 행동양식이 바뀐다.
한참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일요일이었다. 거의 점심시간이 되어서 깨어난 우리는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보통의 임산부는 자궁이 커지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위가 작아져, 한 끼에 먹는 양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빈속'에 이르는 속도 또한 빨라지기 때문에 속 쓰림도 금방 느끼게 된다. 늦잠을 잔만큼 아내는 눈을 뜨자마자 속 쓰림을 느꼈고 나는 얼른 아내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내는 정말 다행히도 큰 입덧 증상은 없었다. 반대로 식욕이 넘치는 증상을 '먹덧'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증상 또한 없었다. 그래도 남편 입장에선 먹고 싶은 게 없는 임산부 아내 또한 다른 종류의 걱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고맙게도 아내는 식사 때면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오늘 아내가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 싶었던 메뉴는 토마토 파스타, 당장에 집에 있는 재료로는 파스타를 빨리 만들 수 없었기에 아내는 기성 소스를 이용해서 먹자고 하였고 나는 토마토소스를 사러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집 앞에 있던 마트에는 소스가 없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다시 5분가량 걸어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고 그 편의점에서 마저 소스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두 번째 실패를 맞이해야 했다. 아내는 계속 허탕 치며 땡볕에 걷는 시간이 많아지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그냥 포기하고 다른 걸 먹자고 했는데,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더 먼 곳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뻔히 구할 수 있는데 조금 더 걷는다고 임산부가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는 '아빠의 열정'이라고 말해줬고, 나는 여기서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흘러나오는 미소를 괜스레 숨기면서 마트로 향했고 토마토소스를 사다가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왜 이렇게 잘해줘?'
키득거리며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보통의 남편들처럼 나도 임신하기 전보다 더 와이프를 챙겨주려 하는 남편이었고, 아내의 물음은 원초적인 궁금증에 가까웠다. 과연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에게 더 자상해지고 더 많은 것을 챙겨주게 되는 이러한 '행실 변화의 매커니즘'이 의식이냐 아니면 본능이냐라는 것이다
의식? 아니면 본능?
이것은 의식일까 본능일까? 아내가 만족감을 느꼈던 내 행동의 변화를 하나씩 살펴보면 두 가지 측면 모두 작용했던 것 같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제 아기가 생겼으니, 아내가 몸이 더 힘들고 불편해질 것이며 육체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무언가를 요청했을 때 사소한 것이라도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이전이라면 '가사분담'이라던지 결혼 이전의 내 '생활습관' 따위의 단어를 떠올리며 물음표를 떠올릴 수도 있을법한 것들에도 말이다.
귀찮음, 공평함, 불편함 같은 잣대로 우리의 가사, 가정에 대한 역할의 '비중'을 재는 행위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의식하여 그러한 잣대들을 애써 접어두었다면 이것은 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 내가 먼저 나서서 아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기도 하다.
한 걸음 물러서서는 이러한 내 행동의 변화가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내 아이의 엄마라는 존재이기 이전에, 나의 아내라는 정체성 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일텐데 이전까지는 그러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잘해줘?'
아내의 이런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었지만 그래도 내겐 작은 통찰의 기회였다. '임신한 아내 더 잘 챙겨주기'는, 평소에 내가 해주지 않았으나 '아내 대신에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임신 11주 차, 한 줄 정보
1. 보통 우리가 아는 '입덧'은 임신초기에 주로 나타난다.
2. '입덧' 뿐만 아니라 그 반대증상인 '먹덧' 증상도 존재한다.
3. 임신 중 특정 음식이 당기거나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호르몬 변화와 체내 필요 영양소의 불균형에서 비롯될 수 있다.
4. 임신초기에는 속 쓰림 증상, 배가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5. 자궁이 점점 커질수록 주변 장기들이 밀려나 그에 따른 증상들이 동반된다.
6. 임신부의 위는 점차 압박을 받아 소식(小食) 위주로 변하므로, 남편은 “소량씩 여러 번 먹을 수 있도록” 작은 식사를 준비하는 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