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속마음
코일색전술 후 아빠는 어지러운 것도, 복시도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퇴원 후 아빠가 바로 재활병원으로 가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아빠는 이제 막 회복기로 접어들었으며, 아직 보행이 불완전해서 낙상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 동생, 내가 출근하면 상주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한 몫했다.
만약 혼자 계시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대처할수가 없다는 게 가장 문제였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아빠 컨디션과, 보행, 근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퇴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의 생각은 다르셨다.
우리에게 병원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면서 집에서 산책하듯이 걷고 그러면 괜찮아질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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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님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집에서 재활한다는 게 병원에서 하는 것과 같을 수도 없을 뿐더러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치료사가 지켜보는 상태에서 치료하는 것과 엄마가 지켜보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더군다나 지금은 발병일이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재활치료 갯수도 최대로 많이 들어가는 시기였다.
해마다 년도가 지나면 치료가 하나 두개씩 줄어든다.
그런데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도 입원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회복기에 접어들어 재활치료를 한다면 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시점이라 우리는 안타까웠다.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에서 퇴원해서 아빠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이번에는 건강을 회복할 지 어쩔 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동생과 나는 지속적으로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들어가는 돈보다는 아빠가 회복되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 치료 잘해서 나중에 아빠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그렇지만 아빠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오히려 화를 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안다면서 코일색전술 이후 많이 좋아졌다는 말만 했다.
집에서 슬슬 걸어다니면 괜찮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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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부모님의 뜻대로 아빠는 자택에서 슬슬 걸어다니셨고
재활의학과 외래는 꼬박 통원하셨다.
재활의학과에서는 연하치료 처방을 내주었는데
6~8주 정도 하고 연하검사를 해보고 치료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
그 치료라고 해봤자 1주일 1회 30분 정도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다는 낫다곤는 생각했지만
부모님에 대한 답답함이 고구마 백만개 이상으로 느껴져서 친정과 거리두기를 했다.
아빠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
현직에 있어 아빠의 상태가 눈에 더 훤히 보였을뿐더러
눈에 보이는 걸 알면서도 입원을 거부하는 아빠를 보면 화딱지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빠 걱정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목메이듯 답답했다.
내 눈에서 멀어지는 게 서로에게 나은 듯 싶었다.
아빠의 입원 거부 사태를 통해 나를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는데 나이 들어서 자식들 말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푸념하듯이 늘어놓았다.
남편의 위로가 됐던 한마디는 무엇이었냐면
"우리 부모님도 장인어른 만만치 않아." 였다.
그래도 내 말을 가장 잘 들어주는 건 자식도, 부모님도 아니고 남편밖에 없다.
있을 때 잘하자. 결론이 왜 이렇게? ㅋㅋㅋ
무튼 남편밖에 없다고 느낀 하루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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