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처음 쓰러졌던 건 내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
그 때 나는 아빠와 한참 사이가 안 좋았고 아빠가 돌아가시든 그렇지 않든
개의치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119를 불러 그래도 골든타임을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빠는 바로 중환자실로 입원했고 엄마말로는 의식이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빠 의식이 깨어난 뒤 아빠를 만나러 갔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도 회복되지 않아서 일반병실에 1달 정도 있다가 퇴원했다.
거의 2달 정도 입원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아빠 나이는 40대였다.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 하며 아빠의 검사 기록(MRI 등등)을 논문에 쓴다며 인터뷰하기도 했다.
우측으로 편마비가 있기는 했지만 보행이나 손가락 사용 등이 가능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걷는 게 느렸고, 우측 다리가 약간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강직 같은 게 없어서 정말 운이 좋았다.
나는 아빠가 그 분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당시 할머니와 농사를 짓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도
우리를 챙기고 아빠의 병원에 왔다갔다 했다. 분명히 아빠가 깨어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번에 아빠가 뇌경색이 재발하면서 물어봤을 때 엄마는 그 때 당시는
아빠가 꼭 깨어날 것만 같았다고, 병원에서는 혼수 상태라고 말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아내의 정성과 기도 덕분이었는지 아빠는 정말 거짓말 같은 상황에서 깨어났다.
(의식을 회복했다는 뜻)
© nci, 출처 Unsplash
아빠가 왜 쓰러졌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족력이 있었던 것 같다. 체중이 제법 나갔었고, 고혈압이 있었는데
술을 자주 드셨다. 매일 저녁이면 소주와 안주를 사오는 아빠의 퇴근 길이 기억날만큼
정말 매일 드셨던 것 같다. 아프고 나서 입맛을 잃었고 그 후로는 오히려 마른 체격을 유지하셨다.
젊었을 때보다 많이 드시지는 않지만 여전히 술을 반주처럼 드셨다.
술 양이 줄었을 뿐, 술 자체를 끊은 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 쓰러졌던 사람이 저렇게 술을 먹다니.. 물론 그 때 당시는 막걸리 종류를 드셨다.
나는 아빠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술을 끊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랬는데 20년만에 뇌경색이 재발했다.
그 날 아빠는 우리 아이들을 저녁때 까지 봐주셨다 아마도 육퇴후 술 한잔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술먹고 나서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동생은 단순히 아빠가 술병이 나서 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빠는 지속적인 어지러움을 호소했고
그래서 응급실에 데려간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별일 없고 괜찮으면 바로 퇴원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PCR 검사상 코로나 양성. CT상 뇌경색이 보여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계속 목소리가 변해서 이빈후과 약을 드셨었다.
혹시 코로나 아니냐며 신속항원 검사를 하라고 말했는데 이렇게까지 병을 키우는 아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 속에 답답함이 켜켜이 쌓였다.